최근 물빛에서 '토론'을 거친 시 2편(<외출>, <저녁 무렵>)과
제 맘대로 쓴 시 3편을 어느 잡지사로 보내면서
하고 싶은 많은 말과 무언의 고통에 관한 시 한 편을 올립니다.
이름하여 <배추론>입니다.
토론을 거치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려니 얼마나 두려운지요...
좋으신 교수님과 동인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한 때임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배추론
배추는 소금에 절인다
숨죽어 물 빠지면
김치를 담근다
뻣뻣한 삶의 고비마다
간을 친다
쑥과 마늘로 견디던 곰처럼
가슴 시린 동굴
요란한 소낙비는 피하지 말고
죽어야 사는
부드러운 배추를 생각하는 밤
창밖이 희끄무레하다
∥시작 여담∥
쑥과 마늘을 찾으며
누구네 집에서 손자를 얻었다는 소식보다 누가 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가까운 사이건 아니건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아뜩한 일이다. 「저녁 무렵」에서는 일주일 전에 통화했던 분이 ‘이슬 마르듯’ 사라져버렸고, 「외출」에서는 혼자 세계에 갇혀 있던 어떤 이가 스스로 ‘어둠의 밧줄’을 잡았다. 뉴스에서도 단출한 가족이 세상과 절연했다는 슬픈 소식을 듣는다. 원하지 않아도 찾아올 죽음인데 왜 서둘렀을까, 얼마나 고독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저녁 무렵’, 어둠이 깔리는 들길을 걸으며 먼저 간 그들이 신생의 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봤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별들이 이 세상을 등진 분들의 이름 같았다. 내가 재벌 2세라면 먼저 복지재단부터 세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늪은 온갖 이물질이 뒤엉겨 있으면서도 고요하다. ‘벙어리 꽃’처럼 말이 없고 바람과 햇볕과 구름에게 자신을 맡긴다. 하늘이 늪의 피부에 말갛게 비칠 때까지 「우포늪」은 스스로 자신을 가꾸고 있었다. 지구의 자궁, 늪이라는 산모는 세상의 모든 찌꺼기를 자신에게 달라고 웅얼거리는 것 같았다. 정화될 세상을 위한 ‘’마중물‘이 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우리가 슬픔을 털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언제나 누워 있는 늪은 생명의 보고(寶庫)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해지고 싶어서 나는 컴퓨터를 켠다. 검색어 하나에 우르르 딸려오는 정보는 ‘멸치 떼’ 같다. 어쩌면 전쟁도 클릭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을 정도다. 인간의 두 번째 인생(second life)은 화면이 제시하는 영상 속에서 커피도 마시고 썰매도 타고, 성지 순례도 우주여행도 할 수 있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뉴 사피엔스」라고 불러봤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고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인간인 나는 소낙비가 내리면 맞아야 하는 사람의 마을에서 슬퍼하고 기뻐한다(「배추론」). 자꾸만 뻣뻣해지는 심성을 말랑말랑하도록 소금을 쳐서 다스려야 하는 일을 겪는다. 그 과정이 살아가는 시간의 전부인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싶어서 ‘쑥과 마늘’이 부족한 나는 오늘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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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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