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을지대병원 중환자실 예순다섯 살 할머니는 메르스 환자가 아니어도 여드레째 가족을 보지 못했다. 뇌경색으로 입원한 이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오면서 격리됐다. 간병하던 남편과 남매도 집에 갇혔다. 할머니는 상태가 나빠져 수술을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제 남편이 중환자실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가족이 쓴 편지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다섯 간호사가 할머니 앞에서 남편 편지부터 읽었다.
"38년 고생도 하고 보람도 컸는데 갑자기 헤어지게 돼 가슴이 미어집니다. 당신 뜻 잘 새겨 자식·손자들과 살아갈 것이오. 이제 호강할 때 돌아가시니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이 세상 모든 근심 떨쳐버리고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켜봐 주시오." 읽던 간호사가 목이 메어 다른 간호사가 이어받았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살림 일으키고, 약한 아이들 훌륭하게 키우고, 못난 남편을 회사의 큰 책임자로 키워내고, 노후 준비도 잘했는데…."
아들 편지가 이어졌다. "얼굴 한번 보여주는 것이 이리도 힘들까.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제 받아들이고 엄마가 이 순간 편안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딸 편지를 읽는 순간 간호사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딸로 살아 행복했고 아이들도 엄마가 제게 주신 사랑으로 키울게요. 다음 생에도 엄마와 딸로 만나요." 할머니는 다섯 시간 뒤 편안한 얼굴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편지로나마 받은 남편의 배웅과 자식의 임종 덕분일 것이다. 모든 것을 가로막는 메르스도 가족의 사랑만은 막지 못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중에서 일부를 옮겼습니다)
*매스콤을 통하여 이미 읽었거나, 들은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라 행여 못보신 분들이 계시면 한 번 읽어 보시라고 올렸습니다. 이제 대구도 청정 지역이 아니라고 하니 모두 조심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