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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향기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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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향기 속에
이재영

내가 꽃을 좋아하니 누가 선물로 대국화분을 주었다. 가을에 활짝 피어 국화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 같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한 소녀를 사모하여 국화 앞에 서면 그녀의 모습이 연상된다. 직장을 마치자 곧 집으로 돌아와서 국화에 정성을 쏟았다. 그 해 그 화분이 집안을 아름답게 장식하더니 눈이 하얗게 내린 후에 고고한 자태를 잃었다. 첫사랑을 여인듯 서운했다.
죽은 대궁을 잘라내고, 가끔 물을 주었더니, 이듬해 봄에 새싹이 났다. 정성껏 길러 한 자 가량 자란 튼튼한 줄기를 몇 마디씩 잘라 순 모래를 담은 박스에 꽂았다. 조생종과 중생종 꺾꽂이를 더하여 반그늘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한 달이 지나니 뿌리가 내리고 속잎이 자랐다. 백여 개가 넘는 화분을 자람에 따라 점점 큰 화분으로 몇 차례나 옮겨주어야 한다, 그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이 최대한 늦게 옮겨 자랄 기간을 짧게 주기로 결론지었다.
이것이 화분을 갈지 않고도 웃자람을 예방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적중했다. 진딧물 예방은 진딧물 전용 약을 쳤다. 냄새는 좀 심하나 그 것을 처야 서너 번에 끝난다. 화분의 크기에 따라 네 포기, 세포기, 두 포기. 한 포기를 심었다. 화분에 물을 주어 반그늘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십여 일 지나니 살아 붙어 생기가 돌았다.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 이층, 옥상에 옮겨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다가 나중에는 안 죽을 정도로 가끔 주었다. 국화도 분재처럼 마디가 굵고 난장이가 되어야 멋있고 아름다운 자태의 큰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삶의 풍우를 이기고 매운 고생 다 겪은 후에 성공해야 인품을 갖춘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것처럼 분재도 구사일생으로 시련을 격고 자라야 작품이 된다. 국화 역시도 예술품이 되려면 그런 과정을 이겨내야 예쁜 맵시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위대한 인간이 되려면 고행이 따르듯 국화도 천하에 미색이 되려면 그만한 진통이 따르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인생을 국화에 묻고 자식처럼 돌보면서 정성을 다했더니 시월 초에 첫 꽃망울이 맺었다. 한 대궁에 한 알만 두고 다 땄다. 계속 맺는 꽃을 따주지 않으면 작품을 망친다. 꽃망울은 처녀의 유두처럼 맺어 유방처럼 소담스럽게 자랐다. 시월 말경 한 잎 두 잎 꽃잎이 벌어지더니. 마지막 꽃잎이 벌 때는 공작이 나래를 편 듯 아름답고 우아하다.
키는 작아도 꽃은 크고 소담하다. 청자화분에 작은 국화 한 포기를 옮겨 은쟁반 받쳐 나의 방 창가 책상 위에 놓았다. 국화가 돋는 햇살 머금고 미소 짓는 모습은 보살의 미소를 보는 듯 마음을 환하게 순화시켜준다. 어느 장식이 이보다 더 화려하고 격조 높은 예술품이 있을까? 큰 교무실에 갖고 가서 책상 위에 드문드문 화분을 놓았다. 온 교무실이 국화 향기로 가득하다. 위아래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기뻐하며 교무실의 분위기가 활기 넘친다.
나의 집 현관에는 추석이 되면 조생종 국화가 활짝 웃으면서 첫손님들을 맞는다. 그때부터 가을 내내 온 가족들은 행복하다. 찬 서리가 내릴수록 국화는 더 곱고 향기가 짙으며 오래간다. 뜰에 단풍과 조화를 이룰 때는 어느 별장에 있는 듯 황홀하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 집안이 국화향기로 진동한다.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이는 날 베란다 앞에 둔 국화는 더 청초하고 아름다워 눈 속에 설국은 미의 진품이 되어 아름다움의 절정을 본다.
그때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와 인연 깊은 지도 어언 이십여 년, 아기 마냥 보살피며 자식같이 길렀네. 생기 어린 잎새 굵고 짧은 대공 마디마디에 내 숨은 정성 서리어 나의 희망 꽃피었네. 해마다 피던 꽃 올해는 철 지나도 피지 않아 가슴 조였더니 뜰에 단풍잎 익고 된서리 내리던 날 노랑, 분홍, 하얀 꽃, 젊은 날 귀엽던 나의 소녀여! 오늘은 백설이 건곤에 가득하니 눈 속에 설국이 애처로워 가슴 타건만, 네 향기 속에 예술의 극치를 본다.
국화 앞에만 서면 붉어진 줄기마다 지난 날 나의 손결을 느끼면서, 한없는 애정으로 눈을 떼지 못한다. 그 때 고생과 세속의 번뇌는 국화 앞에서 다 잊는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이십여 년, 나도 이젠 고목처럼 구겨져 국화에 손 뗀지 십 년이 지났건만, 가을만 되면 국화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국화는 사군자의 하나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국화를 일러 맑은 향기가 집안 가득하니 외로운 듯 꽃다운 향기가 속세를 누른다고 하여 청향일실고방 압속자(淸香一室孤芳壓俗姿)라고 극찬했다. 매화는 잠시 피었다가 시들고, 난은 너무 고고하여 접근하기가 어렵다. 죽은 너무 강하여 부러지기가 쉽다.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외롭고 쌀쌀한 듯하면서도 다정하고, 누님 같이 포근하다. 국화는 첫사랑의 여인이요, 만인의 애인이다. 그래서 국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영원하리라.

*傲霜孤節: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
*淸香一室孤芳壓俗: 향기로 속세를 다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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