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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와 득음의 미학/이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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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1월호에 실린 선생님의 글 읽어보세요

관조와 득음의 미학

이진흥

1.자연과 시인의 눈
철학은 구체적인 것을 추상(개념)화 하고 시는 추상(관념)적인 것을 형상화한다. 예컨대 시는 둥근 과일처럼 만질 수 있고 묵묵해야 하며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는 매클리시의 말(시법)은 시는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형상의 언어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재영 시인은 매우 돋보인다. 그의 시는 철저히 추상어(관념)를 배제한다. 그는 말로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로 제시한다. 그래서 짧다. 拈華示衆처럼 연꽃을 슬쩍 들어올릴 뿐이다. 그는 스스로 <사물의 중심에서 서기를 즐겨하고, 시의 소재 속에 들어가 관찰자로서 최선을 다하며, 그것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문자로 당겨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82쪽)>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사물의 미세한 부분과 그 뒤에 숨겨진 것까지 세밀하게 관찰하여 그것을 이미지로 드러낸다. 요컨대 그는 <이미지에 의한 표현에 적극적(74)>이다.


옥양목 빛 햇빛 아래 쓸쓸한 퇴적암 아래 환한 돌미나리 꽃 아래 바람에 나는 물뱀 허물 아래 꽁지 짧은 새들의 은빛 지저귐!
-「봄날은 간다 ․ 1」전문

시인은 보고 있다. 지금 그가 보는 것은 환한 봄날 바위 아래 피어 있는 돌미나리 꽃과 바람에 날리는 물뱀 허물 그리고 작은 새 몇 마리 그곳에 모여 지저귀는 풍경이다. 그런데 그 풍경 속의 사물들은 그의 시야에 들어와서 더 생생하고 또렷해진다. 갓 빨아 놓은 옥양목의 깨끗한 빛깔과 신선한 감촉이 봄날의 환한 햇빛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쓸쓸한 퇴적암과 그 아래쪽 환한 돌미나리 꽃과 그 아래 바람에 날리는 물뱀 허물을 거쳐 내려가던 시인의 시선이 마침내 꽁지 짧은 새들의 지저귐에 부딪친다. 그 지저귐 소리가 은빛이다. 지저귐이라는 청각적인 울림(청각 이미지)이 너무 깨끗해서 은빛(시각 이미지)으로 빛나는 것이다. 그는 소리를 눈으로 본다. 그에게 詩人은 視人이다. 그런데 그 풍경을 「봄날은 간다」라고 명명함으로써 그가 보는 공간이 시간성을 획득한다. 그의 시선은 옥양목 빛 햇빛이라는 환한 공간에서 퇴적암이라는 지질학적 시간과 돌미나리 꽃이라는 생명의 빛깔 그리고 물뱀 허물이라는 삶의 역사를 보면서 꽁지 짧은 새들의 은빛 지저귐이라는 우주적인 울림에 닿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본다. 그런데 그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욕망에 의해서 굴절된 우리를 위한 사물(Ding fur uns)이다. 인간은 자연(nature)에 인간의 힘을 가미하여(경작하여:cultivate) 문화(culture)를 창조한다. 그리하여 사물을 우리를 위한 것, 즉 유용성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대개 그것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다. 유재영 시인은 바로 이점을 경계한다. 그가 길들여진 가축보다는 야생의 곤충이나 벌레에 관심을 두고, 재배된 곡식이나 채소가 아니라 야생의 열매나 풀꽃에 경도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길들이고 재배하는 것이 인공화 된 문화의 세계라면, 길들지 않는 야생의 자연이 사물의 본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물고기, 나무, 꽃, 곤충과 동물들을 조금 유의해 보면 우리에게 길들여진 것이 없다. 즉 가축이나 과일 혹은 곡식은 나오지 않고 문자 그대로 야생의 것들만 등장한다.
이 시집의 표제로 나오는 <고욤꽃>도 <감꽃>이 아니라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감은 <우리를 위한 사물>(과일)이지만, 고욤은 우리의 <손 너머에 있는 사물>(Vorhandensein) 즉 야생의 열매이다. 따라서 감꽃이 피고 지는 것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고욤꽃의 피고 짐은 대체로 관심 바깥에 있다. 그러나 시인은 유용성의 세계 너머로 시야를 확장한다. 그래서 고욤꽃 떨어지는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것이야말로 유용성의 세계에 묶여 있는 의식을 그냥 거기 그렇게 있는 사물 즉 자연으로 확대하여 해방시킨 덕분이다. 이 때 자연(nature)이란 희랍적인 의미에서 볼 때 피지스(phisis)로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므로 시인의 관심이 문화적인 것을 넘어서 자연에 다가간다는 것은 보다 본질적인 세계로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2.생명의 소리와 득음의 귀
시인은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을 시집의 표제로 정한 것은 <소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시집의 서두에 쓴「시인의 말」에서 그는 <어느덧 내가/작은 고욤꽃/떨어지는 소리를/세어듣는/나이가 되었다니!>라면서 스스로 놀란다. 오십 살이 넘어 고향집에 와서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잠은 이룰 수 없는/밤이었다/고향집에 와서/오십 살이 넘어서야/비로소 듣는//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得音」전문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시인은 그것을 <오십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듣는>소리라고 말한다. 나이 오십이란 공자에 의하면 知天命이다. 자신에게 명하는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는 나이이다. 그는 하늘의 소리에 대한 관심으로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천뢰(80쪽)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소리는 아무 때나 들리는 게 아니다. 시인에게 그것은 바쁘고 숨가쁘게 달려온 젊음을 지나서 <늦은 봄, 민달팽이 한 마리 푸른 산그늘을 지고 아주 천천히 청미래 덩굴 아래를 지나고 있(38쪽)>는 <오십 살>이 되어서야 가능해진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참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트여서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욤꽃은 야생의 감꽃이다. 감의 씨앗을 심으면 고욤이 열리는데 그것은 작고 떫어서 먹을 게 없는 열매이다. 하필 시인은 그러한 작고 쓸모없는 것에 각별하다. 대체로 사람들의 관심은 <……을 위한 사물> 즉 유용성에 기울어 있다. 그러나 이제 <오십 살>이 된 시인의 관심은 그러한 유용성을 넘어서서 작고 하잘 것 없고 쓸모없는 것(무용성)에도 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실라르는 장미꽃 뿌리는 파이프를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미꽃을 파이프라는 유용성에 연결해서 보기 때문에 장미꽃을 순수하게 장미꽃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의 유용성에 묶여 있는 의식(관심)을 해방시킬 때 비로소 사물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인이 지금 감꽃(유용성)이 아닌 고욤꽃(무용성)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은 매우 시사적이다.
시인이 듣는 소리는 다양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모두가 근원에 닿아 있다.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자연(본래적인 것)에 닿아 있는 생명의 소리들이다.

벌써/몇 번째// 어둠을 뚫고,//고요에/이마를/부딪치는//열매가/있다
-「소리」전문

캄캄한 밤에 어둠을 뚫고 열매가 떨어진다. 시인은 열매가 대지에 떨어지는 소리를 열매가 이마를 고요에 부딪치는 소리로 듣는다. 열매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생명이다.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열매가 고요 속에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열매가 익으면 스스로의 중력으로 대지에 떨어지고, 떨어진 열매는 대지에서 다시 생명의 싹을 틔워 상승의 줄기를 키워 올린다. 그렇게 신비한 생명의 한 과정을 시인은 고요 속에서 <소리>로 듣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생명이 열망하는 <지고의 사랑도 뼈가 부서지는 소리>로 듣는다.

풀벌레 소리로/허기를 채우고//오도독!/뼈가 부서지는 소리/누군가를/사랑하는가 보다
-「그 새,」전문

벌레를 잡아먹어야 하는 배고픈 새가 풀벌레 소리로 허기를 채운다. 벌레를 먹지 못하고 그것의 소리만 듣는다면 그 배고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배고픔은 생명에 대한 위협이다. 그런 허기의 상태에서 <오도독!/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시인은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보다>고 추측한다. 즉 사랑이란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통해서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인은 그것을 소리로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의 예민한 청각은 생명의 매우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발가락이 빨간/새 몇 마리/자꾸만 자리를 /옮겨 앉는/노린재나무/동쪽 가지/씨롱처럼 매달린/나방이집 한 채/바 람도 불지 않는데/며칠째/달그락 소리가 났다
-「며칠째」 전문

시인은 지금 새들이 옮겨 앉는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린 나방이집 속에서 며칠째 나방이의 애벌레가 내는 <달그락 소리>를 듣는다. 나뭇가지에 씨롱처럼 매달린 나방이집은 금방이라도 발가락이 빨간 새들의 눈에 띄어서 쪼일 것 같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어린 생명이 이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벌써 며칠째 <달그락 소리>를 내고 있는 그 생명체의 미세한 소리를 지금 시인은 그의 예민한 청각으로 감지하고 있다. 이러한 예민한 청각은 시인이 스스로 말한 바처럼 <오십 살>이 되어서 얻게 된 소중한 감각이다. 그것은 미세한 음정의 차이를 구별하는 음악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혼의 고통과 생명의 숨결을 포착하는 시인의 청각은 음악가의 청음능력과는 달리 삶의 다양한 국면을 깊이 체험하여 얻게 되는 것이다.
3. 작고 약한 것들과 생명 사랑
유재영 시인은 미시적인 사물에서 거시적인 우주를 본다. 이 시집에서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가 함께 어울리고 조응한다. 작은 물방울이 거대한 지구를 적시고, 나뭇잎 하나가 하늘의 무게를 가늠하며, 손톱만한 개구리의 동작이 지구 바깥의 우주에까지 전달된다.

갑자기 수천의 은사시 나뭇잎이 흔들리더니/토란잎에 얹혀 있던 물방울이 똑! 떨어진다/지구의 발등이 젖는다
-「지상에서의 한 모금」 전문

토란잎에 얹혀있던 물방울이 떨어져서 지구의 발등을 적신다는 진술이 놀랍다. 나뭇잎의 흔들림과 물방울의 떨어짐 사이의 긴밀한 관련, 작은 물방울과 거대한 지구의 대비가 우리에게 긴장과 친화 그리고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적막」(이 작품은 이성선의 「미시령 노을」과 비교할 만하다.)에서는 작은 나뭇잎 하나의 무게를 조용한 하늘의 무게로 느끼는 섬세한 감각을 보여준다.

오래 된 그늘이/지켜보고 있었다/나뭇잎 하나가/툭! 떨어졌다/참 조용한/ 하늘의 무게
-「적막」(31쪽)전문

사물은 각자가 고유한 독자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떨어지는 나뭇잎과 그것을 지켜보는 그늘, 나뭇잎의 떨어지는 소리와 그것을 드러내는 조용한 하늘, 그리고 하늘의 무게를 가늠케 하는 나뭇잎의 떨어짐은 모두가 유기적인 관련 속에 있다. 그것은 모든 사물이 결국 자연이라는 본질적인 세계가 드러내는 현상의 일부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눈앞에 펼쳐진 사물, 예컨대 그늘과 나뭇잎과 하늘은 독자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소행성」(이것은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를 연상시키는데)에서, 손톱만한 개구리가 물 속에 뛰어드는 소리가 멀리 지구 바깥의 우주에까지 도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동안 마름잎에 숨어 있던 손톱만한 개구리 한 마리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멀리 지구라는 늙고 병든 소행성에 서 모처럼 들리는 첨벙! 하는 소리
-「소행성」전문

손톱만한 개구리가 물 속에 뛰어드는 소리, 시인은 지금 멀리 지구 바깥에서 늙고 병든 지구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마름잎에 숨어있던 작은 개구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면서 <첨벙!하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지구 바깥에 있는 시인에게 들린다. 살아있는 개구리가 내는 물소리가 늙고 병든 지구에서 들려오는 것이 놀랍고도 반갑다. 그것은 늙고 병든 지구를 깨우는 모처럼의 신선한 생명의 소리로서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은 매우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손톱만한 개구리>처럼 이 시집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투구벌레, 땅개미, 민달팽이, 갈겨니, 피라미, 장지뱀, 도룡농처럼 대체로 작고 약한 것들이다 작고 약한 것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그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그것은 윤동주가 「서시」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고 한 것이나,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과 비슷한 것이다.

어느 절개지,/아슬아슬한 벼랑/묏비둘기 똥만 한/구멍 뚫린 노각나무 잎 사이로/푸른 줄무늬를 한/곤충 몇 마리/ 이 쪽을 향해/ 자꾸만/더듬이를/곧추세우고 있다
-「성역」전문


소위 개발을 위해 산을 깎아서 만든 절개지의 아슬아슬한 벼랑에 위태롭게 서 있는 노각나무, 거기 비둘기 똥 만한 구멍 뚫린 잎 사이로 푸른 줄무늬의 곤충 몇 마리가 이 쪽을 향해 자꾸만 더듬이를 곧추세우는 장면을 시인이 아니라면 누가 눈여겨볼 것인가? 편리한 삶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고 함부로 절개지를 만들어 편리한 고속도로를 내는 인간에게 저 작은 어린 생명들은 한마디의 항의도 하지 못하고 살기 위해서 안타깝게 <자꾸만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런 작고 어린 생명을 소중하게 눈여겨보고 가슴 아파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생명의 가치는 때때로 경이로운 생동감으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러한 생동감을 시인은 예컨대 지저분한 길거리에 서 있는 소녀의 <파랗게 뛰는 관자놀이>에서 발견한다.

<궁물닭갈비> <싱싱노래방> <즉석장어구이> <여종업원구함동원다방> <원조우리왕만두> <멕켄치킨호프꼬치구이> <골드롱대흥대리점> <보광슈퍼> <가보세삼계탕> <쌀떡볶이&튀김> <온양석쇠숯불구이> <이천황토오리구이> <뼈없 는 닭발집> <충북빌딩> 앞//후리지아를 든 소녀가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파랗게 뛰는 관자놀이,
-「봄,」전문

길거리에 함부로 붙어있는 간판이름을 읽던 시인의 시선이 후리지아를 들고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 소녀에게 닿는다. 그리고 문득< 소녀의 관자놀이가 지금 파랗게 뛰고 있는 것을 본다. <파랗게 뛰는 관자놀이>는 약동하는 생명의 증거이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이 「봄」이다. 말할 것도 없이 봄은 생명과 희망의 은유이다. 시인은 지금 너저분한 길거리에서 뜻밖에 <파랗게 뛰는 관자놀이>라는 미세하지만 강렬한 생명의 맥박을 발견한 것이다. 상업적인 욕망의 간판들과 꽃을 든 소녀의 대비, 신호등이라는 외적인 억제력과 관자놀이라는 내적인 생동감의 대응은 조용하면서도 대단히 역동적이다. 이렇게 지루한 일상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역동성을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은 마침내 사물의 표면을 넘어서 근원적인 생명과 그것을 위한 헌신과 사랑에 닿는다.

여름 내내/벌레들에게/몸 보시하고//비로소/누더기 단벌옷으로/돌아와 누우셨다//스님 닮은/그 가랑잎,
-「가랑잎 다비」

지금까지 등장한 많은 생명이미지들과 그것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이 마치 이 세에 수렴되는 듯하다. 자신의 몸을 벌레들에게 다 내어주고, 누더기 단벌옷으로 돌아와 누운 스님을 닮은 가랑잎 한 장,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사랑과 희생의 표상이다. 겉보기에 그것은 벌레 먹은 가랑잎이지만 시인의 눈을 통해서 우리는 수식과 설명이 필요 없는 거룩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겉보기에 하잘 것 없는 사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소중한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바로 그 점을 강조한다. 이 시집에 나오는 수많은 동식물 이름이 두 번 되풀이되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식물 이름이 30개, 곤충(또는 벌레) 이름이 11개, 새 이름이 10개, 물고기나 도마뱀의 이름도 몇 개 나오지만 똑 같은 이름을 두 번 이상 사용한 것은 없다. 다만 식물 이름 중 <마름>이 두 번 나오는데, 그것도 마름잎(24쪽)과 마름꽃(47쪽)으로 다르게 쓰이고 있다.) 이점은 사물 하나마다 그것의 절대적인 고유성을 찾아내려는 시인의 엄정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시인의 엄정한 시선을 통해서 사물은 하나씩 생명으로 깨어난다. 「가랑잎 다비」에서 보여준 것처럼 생명은 그 자체로 거룩한 감동이다. 특히 작고 약한 생명의 빛은 더 귀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시인의 눈은 유용성의 바깥에 있는 작고 약한 하잘 것 없는 것들을 찾고, 문화(우리를 위한 것)보다 자연(그 자체로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유재영 시인이 감꽃이 아닌 고욤꽃에서, 생선이 아닌 피라미에서 더 근원적인 생명의 빛깔과 소리를 발견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시인은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로 제시한다. 마치 염화시중처럼…… 미소 짓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참 좋은 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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