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문학 포럼’에 ‘트렁크’란 시로 유명한 김언희 시인이 왔었어요.
동안은 젊은 예술인들이 주로 와서인지 문학하는 사람으로서의 ‘비장함’ 같은 건
잘 찾아볼 수 없었지요.
그런데 김언희 시인은 달랐고, 그래서 아주 반가웠습니다.
평생 비주류로 살길 원했는데, 어느새 주류가 된 듯해서 슬프다는 이야기,
10년을 그리워하다가 기적처럼 만난 어느 화가에 얽힌 이야기,
무엇보다 그 화가의 작품 앞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예술정신에 부끄러웠다는 이야기,
그렇게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렇게 썼다는 이야기….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비장함이 가슴을 쳤습니다.
작가를 만나고 나면 ‘뭐, 작가야 그저 작가고 작품은 작품이지.’ 라고 자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의 작품이 새로 읽고 싶어지는 작가가 있는데, 이 시인은 후자더군요.
시인의 시 한 편 올립니다.
아 참! 메나리님의 글 밑에다 주절주절 내 얘기만 했네요.^^
메나리님, 사진 잘 봤습니다.
상처는 많이 나았나요?
이봐, 오늘 내가 / 김언희
문이, 벌컥
열리고 헐레벌떡 추억은
되돌아온다 마치 잊은 것이라도 있다는 듯이
추악한 삶 보다 끔찍한 것은 추악한 추억
까마귀 고기를 먹어가며 추억은
정욕과 망각의 까마귀 나를
구워 먹으며 추억은
나보다 오래
살 것이다 헐떡거리며 추억은 백 살까지
발기할지 모른다 이미
백 살일까, 이봐
오늘 내가
백 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