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잠깨는 순간 / 이진엽
길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웠다
주인을 찾아 줄 수도 없어
호주머니에 넣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누굴까, 익명의 얼굴들이 실루엣처럼 흔들리다가
흑백 필름으로 스쳐갈 때
불현듯 호주머니에서 날개 치는 소리
대지의 어둠 속에서 잠자고 있던 것이
내 눈빛을 받은 후부터 푸른 기지개로 일어섰다
이제 호주머니는
잠 깬 사물이 숨 쉬는 존재의 작은 방
아늑한 그 방에서
종이돈이 저렇게 온몸을 비트는 것은
그를 비추는 내 의식의 불빛 때문이라 생각할 때
불현듯 이 세계가
나의 열쇠로만 달까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는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
쌀쌀한 꽃샘 바람 속에서도 필 꽃들을 다 피어 눈 속이 여러 빛깔 꽃들로 빽빽합니다 봄은 정말 놀라운 계절임엔 틀림없습니다 길섶에 뿌려놓은 자잘한 꽃에서 큰 나무의 화려한 꽃까지 샅샅이 뒤져 피어 올리는 집요함이 딴 세상을 데려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꽃들의 심장 소리를 무음으로 한 건 탁월한 선택입니다 저 수많은 꽃들의 심장이 한꺼번에 뛴다면 그 소리를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을까요 피어 있는 것만으로도 천지를 흔드는
아우성인데....
어제는 문화에술회관 달구벌 홀에서 정산설명회가 있었습니다 예술지원금을 받은 단체들이 정산 집행시 참고해야 할 사항들을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잘 듣고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유감없이 피어 있는 봄꽃들을 마음 껏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