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
글을 쓰는 동안 당신은 다소곳이 앉아 있고
구룡사 대웅전 뜰에서도 당신은 내 옆에 있었다
외출한 사이 당신은 부엌에 들어가
저녁을 짓고 밥상을 차려 놓는다
삶의 신산함에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와도
당신은 감꽃 같은 해맑은 웃음으로 나를 맞았다
어느 날 당신은 병실에 누웠고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까마귀 낮게 깔리는 하늘
나는 영정과 함께 당신을 묻었다
이제 어디에도 당신은 없었다
심장을 찢는 고통 속에서 불현듯 당신을 보았다
끝내 떠날 수 없었던 당신은
우렁각시처럼 서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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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저미는 작품입니다.
<삶의 신산함에 얼굴을 찡그리고 돌아와도> <감꽃 같은 해맑은 웃음으로 맞아> 주던 <당신>이 <어느 날 병실에> 눕고, <의사는 고개를 저었>을 때의 그 절망과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인은 그것을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오히려 그의 슬픔은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까마귀 낮게 깔리는 하늘>이 대신해서 드러내 주는 것이지요. 시인은 <영정과 함께 당신을 묻>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을 땅에 묻는 것보다 더 가혹한 행위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제 어디에도 당신은 없>다는 냉엄한 현실, 그 슬픔과 고통을 절제된 언어 속에 감추기 때문에 읽는 이의 가슴이 저밉니다.
<사족> (1) 제 2련의 <심장을 찢는 고통>에서부터 마지막까지는 생략하시면 어떨는지요? 정지용의 <유리창> 혹은 김광균의 <은수저>와 같은 놀라운 절제의 아름다움이 마지막 세 행 때문에 풀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독자에 따라서는 저와 의견이 다른 분들도 있겠지만, 저 같으면 생략하겠습니다.
(2) 제 4행의 <차려 놓는다>를 <차렸다>로 바꾸는 것이 시제에 맞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