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감님 (Inspiration)
이규석
새벽마다 열린 창으로 오시곤 하시더니
도대체 어디로 떠나신 겁니까
얼마나 멀리 가셨기에
아침 커피가 다 식도록 돌아오시지 않습니까
고샅길 따라 마중을 나섭니다
이슬로 오시나 싶어 풀 섶을 헤쳐 보고
바람으로 오시려나 나뭇잎을 올려다봅니다
꽃잎 툭툭 터지는 연밭을 둘러보시느라 늦으신 겁니까
아니면 대책 없는 더위에 지치신 겁니까
번갯불처럼 빨랐던 영감님
받아 적을 종이 찾는 새 떠나셨으니 너무 하셨습니다
그림자 한 자락도 남기지 않고
헌 발자국 흔적조차 지우고 사라지셨으니
참으로 매정하시군요
직관의 날만 세우는 제가 미우셨던가요
하필이면 뒷간에 앉았을 때 오시면 어쩌라는 겁니까
시인은 목이 마릅니다
영감님을 기다리던 내 친구 화가는 황칠을 해버렸고
음악가는 콩나물처럼 목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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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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