靜中動이라고 하던가요?
고요함 속에서도 역동적인 힘과 변화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또한 변화무쌍한, 늘 움직이는 것들 속에서도 결코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중심점 하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지요.
사실 그런 경지쯤이야 되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가서 함부로 손잡을 수 없는 지고의 그 무엇에 대한 끊임없는 지향'이 바로 문학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픔과 상처' 투성이가 되기도 하겠지요.
글을 쓴다는 것과, 글(시와 소설)에 대한 담론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도,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 것도,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도 아닌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지요. 그 모든 외적인 것은 불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리무중님이 이렇게 오시다니, 그동안의 일이 보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이렇게라도 뵙게 되길 바라도 되겠지요?
고맙습니다.
> 오리무중 님이 쓰신 글입니다.
> "너는 거기 있거라
> 홀로 거기 있거라
> 더 멀리 가지도 말고
> 더 가까이 오지도 말고"
>
> 예전엔 몰랐습니다.
> 왕성한 에너지는 늘
> 움직이는 것들에 있다고
> 생각했습니다.
> 변화는 그렇게 움직이는
> 것들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 허나, 이제 가만히 한자리를
> 지키고 있는 흔들림 없는 자세에
> 오히려 더 큰 힘이 있다는 걸
> 어렴풋이 느낍니다.
> 늘 한결같을 수 있는 정신은
> 더 큰 삶의 버팀목이 될 수
> 있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
> "추근대는 바람에도 옷자락 하나 잡히지 말고
> 언제나 淸淸하게"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 더 큰 존재의 정의를 지켜내며
> 묵묵히 견디어 내는 자,
> 바로 '섬'같은 사람입니다.
> 그래서 그런 자를
> "아픔과 상처 깊고 넓어도
>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것은 아름답더라
> 가서 손잡을 수 없는 것은 아름답더라"
> 고 말하게 되는게 아닐까요.
>
> "오늘도 나는 멀리서 너를 그리노니
> 간절한 내 눈빛 하나로
> 천년을 그 자리에 살아 있거라"
>
> 금이정씨가 던져준 화두 - '섬'
> 두고두고 당신과 그 '섬'을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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