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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정씨의 <우리는 사자입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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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자입니다!"라는 금이정씨의 선언적인 제목은 문자 그대로 사자후처럼 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면에서 너무 나긋나긋하고 가볍고 소박하게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습관처럼 웃고 떠들면서 편의를 쫓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금이정씨가 우리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그런 뜻에서 나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왠지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이 떠올랐습니다. 지식의 폭풍과 집요한 사색과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들, 예컨대 죽음과 삶과 사랑과 고독과 지성과 허영과 양심과 미와 현실.... 등등 요컨대 인간학을 아주 진지하고 치밀하고 집요하게 얘기하는 위대한 작가의 소설이 생각난 것입니다.
옛날 학생시절, 나는 우리나라 어느 여류작가의, 제목이 무슨 꽃 이름으로 된, 비교적 두꺼운, 소위 대중소설((?), 그때는 소설을 본격소설과 대중소설이라고 분류해서 말하곤 했었지요)이라고 하는 것과 토마스 만의 미완의 작품 <펠릭스 크룰의 고백>이라는 두꺼운 소설을 동시에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함께 읽으면서 그 때 나는 과연 소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소박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왜 토마스 만을, 왜 도스토엡스키를 위대한 작가라고 하는가를 어렴풋이 알 듯도 했습니다.
학생시절, 존경하던 교수님 한 분이 독서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흔히 학생들이, 그들의 취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받으면 주저하지 않고 '독서'라고 가볍게 대답하는데, 어떻게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독서는 그대로 아르바이트, 즉 일 혹은 노동과도 같은 힘든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독서를, 문학을 가벼운 취미 정도로 여기는 내 또래 학생들의 경박성을 꾸짖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모르지요. 당시만 해도 전후의 암담한 기류가 가시지 않아서 실존주의가 풍미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고독'이나 '부조리' 혹은 '한계상황' 따위의 어둡고 무겁고 사변적인 명제들이 절실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우리들은 교수님 말씀을 그대로 좇았는지 모릅니다. 허나 지금은 이념의 벽이 무너지고 모든 기존의 가치와 질서체계가 개편되면서 소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시대가 되었으니 누가 골치 아프게 키에르케골이나 도스토엡스키나 토마스만을 읽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한없이 가벼운 재치문답식의 순발력은 존중되지만, 느리고 깊고 진지한 것들은 골치가 아프다고 외면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어떤 학생에게 나는 왜 진지한 연극보다 텔레비전의 코메디 프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부담이 없잖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최대한 즐기고 살아도 아쉬운데 무엇하러 고민하고 무겁고 부담스럽게 사느냐는 것이지요.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가치를 두는 것은 <부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차이콥스키보다는 팝 가수의 가볍고 감미로운 노래가 더 위안이 되고 글자가 빽빽한 소설보다는 칼라풀한 만화가 이 스피디한 세계 시민에게는 더 먹혀들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오늘 금이정씨가 진지하고 용기있게 우리들이 달콤하고 가벼움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질책(?)하고 나선 것입니다. 옛날부터 良藥苦於口라고 했다지요. 과연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는(忠言逆耳) 것이라고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등에 혹은 쉬파리라고 했다지요. 나태한 잠에 빠지는 아테네를 찌르고 괴롭혀서 정신차리게 하는 쉬파리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그 말이 금이정씨의 글에 붙여놓은 이도원씨의 리플을 읽으면서 떠오르고, 이런 분들이 계셔서 물빛이 퍽 자랑스럽고 든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금이정씨가 몰아부친 것처럼 이러한 인터넷의 사이버 세계가 온전히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 나는 이 사이버를 통해서 쉽게 노출되는 우리들의 가벼움, 존재망각의 타락한 일상성 등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솔직하게 지적해 준 데 대한 공감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금이정씨의 물빛에 대한 진지하고 애정어린 말씀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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