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지다
권영호
미친년 널 뛰듯
사람 속 확 뒤집어
마음둑 다 허물어 놓고
나 몰라라 하는
저저 뻔뻔한
집중호우
___________________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짧은 시를 선호합니다. 독일어의 시(Dichtung)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도 원래 시는 짧게 압축한다(dichten)는 뜻에서 나온 것을 보면, 시는 가장 짧은 문학적 표현 형식이 되겠지요. 그래서인지 요즘 시가 길어지는 경향을 나는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권영호 시인은 <홍수>라는 엄청난 자연재해의 사태를 단 한 문장 속에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 밖의 사태, 그에 대한 위태한 그러나 속수무책의 느낌을 <미친 년 널 뛰듯 한다>는 속담을 빌어다가 단순하게 드러내고 있지요.
그런데 시에서 속담이나 격언을 빌려쓰는 것은 모험입니다. 서정시에 속담이나 관용어를 빌려 쓰는 것을 꺼리는 까닭은 그것이 수천 수만 년 민족의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지혜이지만 시적인 새로움(창조적 표현)에는 상치되는 진부함(?)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는 그 다음 구절들이 긴밀한 필연성을 가지고 잘 연결되어 있어서 그 점을 충분히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시에서 <홍수>는 물론 단순한 자연재해 사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사의 여러 가지 위협적인 일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야말로 <사람 속 확 뒤집어 마음둑 허물어놓고 나 몰라라 하는 뻔뻔한>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각 분야에서 우리는 그러한 분통터지는 일들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작자는 그러한 일들을 <홍수지다>라는 재해의 현상에 은유하면서, 그것을 지극히 서정적으로 해석하여 독자들의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예컨대 저 홍수의 사태를 지극히 주관적인 <뻔뻔한>이라는 낱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리고 이 작품에서 <집중호우>라는 엄청난 사태를 독립시켜서 하나의 연으로 처리한 것도 앞 련의 긴장의 무게를 절묘하게 집약한 것이어서 독자들의 기억에 강한 인상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