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호 시인께,
오랜만입니다. 권영호님의 시집<바람은 속도계가 없다>에서 전에 읽은 기억이 나지만 이번에 이곳 물빛 홈에 올리신 시를 다시 읽으니 새삼스럽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감탄을 했던 구절들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봄밤1>과 <봄밤2>도 그런 구절들이 들어있는 시여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봄밤1>은 짧게 표현할 수 있는 아주 이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왕에 짧게 쓴다면 아주 욕심을 내서 제 1련으로 끝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도 나는 혼자 해 보았답니다. 1련에는 마치 일본의 <하이쿠>를 읽는 것 같은 짧고 강렬한 미감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해본 모양입니다. 그리고 보면 2련과 3련은 1련의 그 강렬성을 조금은 삭감시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것들(제2련, 3련)은 1련과는 의미상으로 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데다가, 인생론적인 회의(?)를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인듯 싶습니다. 2련과 3련 공히 독립적으로 읽으면 아주 좋습니다. 특히 3련의 <날마다 달은 기울어/ 온몸 무너져 내려도> 같은 구절은 매혹적입니다. 그런데 2련은 1련과 관련해 읽으니까 1련이 손해보는(?)듯한 느낌이 드는군요(물론 그것은 나의 편협한 시읽기 버릇입니다만).
그리고 마지막 련의 <어.찌.할.꺼.나>라는 구절에도 좀 더 지적인 통제를 가해서 1련에 걸맞는 표현, 예컨대 권시인께서 다른 작품에 쓰셨던 <아찔한 유혹>이나 <황홀한 절망> 같은 말(물론 여기서 이 말은 전혀 적당치 않습니다만, 예를 든다면 말입니다.)을 발견해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어찌할꺼나>하고 시적 화자가 주저앉지 말고 더욱 긴장시켰다면 독자들이 주저앉았겠지요? 그렇습니다. 작자가 주저앉지 말고 독자가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게 했다면.....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겠지요?
어쨌거나 권영호 시인이 보여준 이 작품 <봄밤>은 그 강렬한 관능과 삶의 회의와 절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마는 우리 삶의 한계--- 그런 것이 주는 안타까움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특히 이 시의 제목인 <봄밤>이 환기하는 어둠과 생명에너지 그리고 기쁨과 안타까움이 짧은 몇 구절 속에 잘 녹아서 나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물빛 토론회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혼자 칩거해서 정말 놀랄만한 작품을 쓰고 계신 모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