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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22 09:22

이진흥님의 <저녁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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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자기를 낮추는 겸양의 시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저항할 건덕지도 없다. 그건 시인 개인의 품성일 따름이지 모든 시인이 불경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시인이 자신을 낮춰 우러러는 대상에 대한 경외감(시적완성도에 성공했을 경우)이 따르든지 아니면 편치 않은 부담이 다가올 따름이다. 이때의 부담감이란 자기가 낳은 아이를 자랑하면서 '내 아기가 말을 했다니까요, 내 아기가 이제 걷기 시작했다니까요'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호들감을 떠는 어미의 이기심과 만났을 때의 불편한 감정과 닮았다. 사적인 감정을 억지로 공유하고자,전파시키고자 할 때 마찰이 생기는 것이다. 과연 이 <저녁놀>이 사적인 감정을 잘 승화시켜 공적인(적어도 시인이 자신의 시를 일기장에서 구출시켜 지상에서든,온라인상에서든 발표한다면 모두 공적인 영역에 들어간다)세계로 이끌었는 지 살펴보자.

이 시에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1,2행에서 ' 시인은 벼랑위로 새 털 하나 날려버린다'라고 말한다. 벼랑 아래가 아닌 벼랑 위로, 날려보낸다가 아니라 날려버린다라고 표현했다. 새털을 벼랑 위로 날려버리는 일은 물리적인 법칙을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이다. 시인은 우주의 질서를 위배하면서도 자유를 상징하는 새털 하나까지 헌정하여 자신의 애절함을 나타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때의 새털은 시인의 것이 아니라 3,4,5행에서 보여 주듯 부러진 날개의 주인공의 것이다. 그 주인공은 어디로 사라졌다(8행)고 했다. 원래 주인공의 것을 돌려준다는 것이나, 자신의 것을 바친다는 것이나 그렇게 의미상 대단한 차별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숨죽인 매혹이 능선에 걸린다'(6행) '고통을 드러내는 눈부신 살갗'(7행)이라고 말한다. 저녁놀은 또다른 하루를 낳기 위한 산통이라는 싯구절을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저녁놀 또한 어느 한 대상을 경배하는 진혼의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저녁놀은 시인의 속에서 다시 굳건한 성채로 환기된다. 가공할 만한 저녁놀에서 가공된 성채로 대치되는 것이다. 시인은 맘껏 경배한 대상을 또다시 자신의 안에 봉헌한다. 이 보다 더한 경외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진혼곡의 대상자가 과연 누굴까를 생각하다가 이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용운의 '님은 갔습니다'에서 님은 여기서 무엇인가를 달달 외우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시인의 품성, 개인적인 품성이 아닌 인생관, 역사관을 캐묻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관까지도.
이진흥시인에게 이토록 커다란 그림자를 남겨준 그는 누구인가가 남았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건 시의 완성도에 따라 판명된다고 했으니 읽는 독자가 나름대로 추론할 따름이다. 불행히도 나는 함께 공유되지 않았다. 나의 시를 보는 눈이 아직 주체적인 때문이다. 쉽사리 시인과 함께 깨춤을 추진 않을 것이다.
이 <저녁놀>은 이미지 구축에는 성공했을 지 몰라도 함께 공유하기엔 부족했다. 객관적이고 간결한 시어에도 불구하고 '헌사'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인 스스로가 너무 자신에게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인에게 '공적인 영역에로의 깊이'를 강요하고 있다. 이게 터무니 없는 요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하고 있다. 바로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진흥님의 반론을 기대한다.


***김남주 시인의 <시인이여>라는 시를 소개한다.

시인이여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싸움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압제자의 가슴에 꽂히는
창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거기서 끝간데까지
사랑하고 증오하자
중용은 시가 아니다
그것은 성자들이나 할 일이다
시인은 성자가 아니다
혁명하는 사람 그가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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