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원 선생님께,
다른 분의 작품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간곡하게 부탁을 하시기에 손을 대 보았습니다.
우선 선생님께서 <석양>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나를 제 나름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설명이나 수식은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좀 과감하게 고쳐 보았습니다. 제목도 바꾸어 보았지만, 전체적인 심상은 <석양>입니다. 첫줄의 <안경을 탁자 위에 놓는다>는 것과 <석양(저녁 노을)> 그리고 마지막의 <성당의 십자가>를 좀 더 긴밀하게 연결시켜 보았는데...... 참고로 하시고 선생님이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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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본
석양
안경을 탁자위에 놓는다
바람이 대숲을 흔들다 주춤한 사이
문득 안경에 비친 창문을 열고
투명한 햇살이 남긴 오후를 잘라낸다
골목길엔 비둘기 구구구 울고
전신주 후박나무, 집들이 그려낸 조형들
내안에서 아우성하는 파도로 부서진다
이런 날 감옥의 비애 같은 열망조차
수천나비로 날다, 뭉크의 절규로
석양의 송림에 핏물을 쏟아낸다 그
섬뜩한 울림, 혹은 노을의 형해로 남아
반란하는 너희들 비밀을 땅에 묻는다
또 왕성한 내 욕망의 순수를 바쳐
날마다 눈부신 금박을 입혀준다
성당지붕 십자가도 반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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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퇴고과정
석양 .... 안경을 벗으며
안경을 탁자 위에 놓는다 ...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놓는다
바람이 대숲을 흔들다 주춤한 사이 ..... 바람이 대숲을 흔들자
문득 안경에 비친 창문을 열고 .... 안경알에 비친 저녁 햇살이
투명한 햇살이 남긴 오후를 잘라낸다 ..... 창 밖의 물상들을 밀어낸다
골목길엔 비둘기 구구구 울고 .... 골목길엔 비둘기 울고
전신주 후박나무, 집들이 그려낸 조형들 .... 전신주와 후박나무, 도시의 지붕들이
내 안에서 아우성하는 파도로 부서진다 .... 내 안에서 파도로 부서진다
이런 날 감옥의 비애 같은 열망조차 ....... 추억의 갈피에서 솟구치는 비애가
수천나비로 날다, 뭉크의 절규로 .... 뭉크의 절규를 쏟아낸다
석양의 송림에 핏물을 쏟아낸다 그 ...... 젊은 날들은 송림 사이로 지나가고
섬뜩한 울림, 혹은 노을의 형해로 남아 ....오오, 하늘을 고통으로 물들이는
반란하는 너희들 비밀을 땅에 묻는다 ...... 장엄한 노을의 형해
또 왕성한 내 욕망의 순수를 바쳐 .... 안경알에 묻은 저 빛깔 위로 눈부신
날마다 눈부신 금박을 입혀준다 .... (삭제)
성당지붕 십자가도 반짝이고 ............... 성당의 십자가 길게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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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쳐본 작품
안경을 벗으며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놓는다
바람이 대숲을 흔들자
안경알에 비친 저녁 햇살이
창 밖의 물상들을 밀어낸다
골목길엔 비둘기 울고
전신주와 후박나무 혹은 도시의 지붕들이
내 안에서 파도로 부서진다
추억의 갈피에서 솟구치는 비애가
뭉크의 절규를 쏟아낸다
젊은 날들은 송림 사이로 지나가고
오, 하늘을 고통으로 물들이는
장엄한 노을의 형해
안경알에 묻은 저 빛깔 위로 눈부신
성당의 십자가 길게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