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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씨의 작품 <아이스 홍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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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홍시
정해영

무더운 여름날
알맞게 익은 홍시를 먹는다
저장된 가을의 뚜껑을 열면
아버지의 붉게 타던 가슴이 보인다
육남매를 거느린 무거운 가장의,

온식구가
감을 따던날 가득히
담아놓은 소쿠리로 몰려드는
그 눈부시던 가을햇살
잘 익은 감잎 같은 납작납작한
형제들 웃음과 함께


아버지는 사과상자에
감을 담으신다
작은것은 큰것에 눌리지 않게
서로서로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짚을 놓으신다
다가올 추운날의 양식으로

지금 감을 먹는다
40년 전 아버지의 감을
아버지세대가 낳아 놓은 이 편한 세상에서
서늘하고 달콤하게
혹은 서럽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이스 홍시>라니.... 아마도 홍시를 냉장고에 얼려서 마치 얼음과자 맛을 내게 한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무더운 여름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잘 익은 홍시를 꺼내 먹으면서 그 차갑고 달콤한 맛에서 작자는 옛날 육남매를 거느린 아버지의 사랑과 형제들의 정겨운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옛날에는 추운 겨울에나 먹는 홍시를 요즘에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차갑게 해서 먹을 수 있으니 세월이 많이 변했지요.
이 작품은 홍시라는 부드럽고 달콤한 과일의 맛을 매개로 해서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분의 사랑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작자는 아버지 시대의 궁핍과 현시대의 풍요를 대비하면서 오늘의 풍요를 가능케 해 준 아버지세대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세대를 생각하면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서늘하고 서러운 느낌이 드는데, 그것을 작자는 차가운 홍시의 맛 - 서늘하고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서럽게 느껴지는 -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어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평(흠잡기)하는 자리이니까, 사소한 몇 가지 표현상의 문제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제 1 련에서는 <저장된 가을의 뚜껑>이라는 말이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저장된 가을의 뚜껑>이라니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시는 암호가 아니니까 작자는 자신의 독특한 체험이나 상상이라해도 그것을 표현할 때에는 독자가 유추할 수 있도록 어떤 장치를 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육남매를 거느린 무거운 가장>에서도 아버지를 설명하는 <무거운>이라는 표현이 부자연스럽습니다. 혹시 이 말은 <육남매를 거느린 가장의 무거운(뜨거운)>이 아닌지요?

제 2 련에서는 온 식구가 <감을 따던 날> 다음에는 콤마(,)를 넣든지, <가득히>를 줄바꿈을 해야 의미전달이 자연스러울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득히 담아놓은 것은 물론 <감>일 테지만 전체적으로 비문 같습니다. <온 식구가 감을 따서 가득히 담아 놓은 소쿠리에는 가을 햇살이 몰려들어 눈이 부시고>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데.... 시의 문장은 과감한 생략이나 고도한 비유 등으로 해서 어렵게 표현될 수는 있어도 비문이 되면 안됩니다. 그리고 <잘 익은 감잎 같은 납작납작한/ 형제들 웃음>이라는 표현은 재미있지만 감잎이 잘 익었다는 것도 좀 이상해 보입니다. 감잎은 <잘 익은> 게 아니라 혹시 단풍으로 <잘 물든>게 아닌가요? 그러니 이 부분(제2련)을 어법에 맞추어 고친다면

온 식구가
감을 따서 가득히 담아놓은 소쿠리에는
가을 햇살이 몰려들어 눈이 부시고
형제들의 웃음꽃이 감잎처럼
곱게 물들어 떨어지던 날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제 3련은 비교적 정리가 잘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작은 것은 큰 것에 눌리지 않게/ 서로 서로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짚을 놓으>시는 아버지의 섬세한 배려가 따뜻한 사랑으로 스며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다가올 추운 날의 양식으로>에서 <양식>이라는 말이 너무 직설적으로 느껴지는군요. 그냥 <다가올 추운 날을 위하여>정도로 하면 어떨는지요?

제4련의 지금(무더운 여름날이니까 지금 작자가 먹는 감은 냉장고에 넣었던 작년의 감이겠지만) 감을 먹으면서 그것을 <40년 전 아버지의 감>으로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세대가 낳아 놓은 이 편한 세상에서>라는 구절에서 <낳아 놓은>이란 표현이 좀 어색하지 않습니까? <세상>을 아버지가 <낳아 놓다>니..... 차라리 <마련해 놓은>이나 <만들어 놓은> 혹은 <준비해 놓은> 정도가 자연스럽지 않을는지요?

전체적인 발상이나 분위기가 매우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그런데 너무 사소한 몇 가지 표현만 지적했으니 작자는 불만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지적한 점에 대하여 이견(혹은 불만)이 있으시면 다음 모임에서 토론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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