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 시인의 <들여다본다>에 대하여 > 작품을 읽고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작품을 읽고

|
03-12-03 11:58

김상연 시인의 <들여다본다>에 대하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전 체 목 록
들여다본다
김상연

시골길을 가다 보면
무덤과 마주칠 때가 있다
사람들 내왕이 뜸한 길가나
산비알 야트막한 구릉지
오며가며 인연 닿은
무덤들 가운데는 간혹,
생전에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 보따리 하나쯤
이승 어디에 숨겨두었을 법한
마음이 가는 무덤도 있다
그럴 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덤을 들여다본다
둥글게 뭉쳐진
한 사람의 생이
툭, 툭, 만져질 것만 같아

------------------------

김상연 시인의 시와 그에 대한 이도원씨와 서경애씨의 짧은 감상문도 잘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이라는 데 공감합니다. 나는 시골에 살고 있는 이 시인을 시적으로 부러워합니다. 토론회 때 종종 그가 보여주는 시골이미지와 토속어가 근원적인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두 군데 표현에서 나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1. 이 시에서 화자의 가장 중요한 행위를 나타내는 <들여다본다>라는 표현에 대한 것입니다. "들여다본다"는 말은 바깥에서 안쪽을 보는 것이고, 어떤 작은 사물에 눈을 가까이하여 자세히 보는 것, 즉 영어로 표현한다면 look in 혹은 look into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무덤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두 가기 경우, 즉 무덤에 구멍이 나서 속을 들여다보거나, 무덤이 가령 도토리처럼 작아서 눈을 가까이 하여 자세히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무덤은 우선 물리적으로 모양이나 크기가 <들여다본다>는 말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컨대 <빈 상자 속>이나 <자동차 안> 혹은 <깨알같은 글씨>는 들여다보지만 <건물의 지붕>이나 <언덕> 혹은 <산>은 들여다보지 않고 바라보거나 살펴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도원씨는 그 점을 <무덤 속의 망자의 슬픈 넋을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아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그에 앞서서 우선 표현상 무리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작자의 탁월한 표현대로 <생전에 다 풀어내지 못한/이야기 보따리 하나쯤/ 이승 어디에 숨겨두었을 법한/ 마음이 가는 무덤>도 있어서, 그리고 <둥글게 뭉쳐진/ 한 사람의 생이/ 툭, 툭, 만져질 것만 같아>서 그러한 <한 사람의 생>의 흔적을 찾아보는 행위라면 물리적으로 그것은 무덤의 겉을 자세히 보는 것이므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살펴본다>가 더 옳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둥글게 뭉쳐진 한 사람의 생이> <만져질 것> 같은 것이라면 더구나 <들여다본다>는 시각적인 표현보다는 <건드려본다>거나 <만져본다> 혹은 <쓰다듬어본다>는 촉각에 기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우리 토론회 때 늘 주장합니다만, 이미지는 감각적인 것이고 그것은 물리적으로 타당한 것입니다.

2. 같은 문맥에서 <툭, 툭, 만져질 것만 같아>라는 표현입니다. 풋풋하고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감각을 확장하고 새롭게 전환하는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감동의 핵심은 리얼리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표현은 <감각을 확장시키는 의도>가 돋보이지만, 동시에 작위적 표현(억지스러움)이기도 해서 리얼리티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툭, 툭,>이란 아주 짧게 부딪치는 모습입니다. 예컨대 <발로 툭, 툭, 걷어찬다>든지, <손으로 그의 어깨를 툭, 툭, 치며 지나간다>는 등의 표현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작자는 <툭, 툭,>이라는 짧은 부딪침이나 건드림을 <만진다>는 동사를 꾸미게 합니다. 낯설어서 새롭고 재미는 있지만 그만큼 작위적이어서 진실성은 감소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툭>의 시간에는 치거나 건드릴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시가 예술작품으로서 리얼리티를 드러내려 한다면, 작위적인 것은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AG •
  • ,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목록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8 김세현씨의 [상사화]를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7-01-17 1363
57 김학원 선생님의 <집사람>을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7-01-04 1239
56 정해영씨의 [그곳이 아프다]를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05-16 1077
55 정해영씨의 <연인>을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5-02-28 1059
54 강은소 시인의 <적멸궁에 앉아>를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5-02-01 1529
53 김학원 선생님의 작품 <석양> 고쳐읽기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10-15 1031
52 김학원 선생님의 <낙조>에 대하여,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10-14 1270
51 신상조씨의 [안녕, 잘 가]를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09-17 1291
50 정해영씨의 작품 <아이스 홍시>에 대하여,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07-01 1189
49 신상조씨의 작품 <침묵>에 대하여,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06-18 1223
48 신상조씨의 작품 <편지>에 대하여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03-25 1006
47 신상조씨의 [눈바람]을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02-18 1127
46 신명숙씨의 <산은 지금 올이 고르다>를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02-09 1775
45 신상조씨의 <곰국을 고며>를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4-01-29 1346
» 김상연 시인의 <들여다본다>에 대하여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3-12-03 1486
43 이도원의 소설 [내 생의 자명종]을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3-09-09 1267
42 정정지님의 시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3-05-29 939
41 이상(2商)님의 작품 [산과 노을]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3-05-22 908
40 은장도님의 [窓]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3-05-20 863
39 김학원 선생님의 [아침]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3-05-15 816
38 김세현의 [중독자]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3-02-08 852
37 이도원씨의 소설[자개장롱이 있는 집]을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2-10-02 1058
36 김학원 선생님의 [숲에 들어간 이유]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2-04-08 646
35 [김학원 시]의 불가사의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2-04-01 569
34 답변글 선생님의 소설 <결혼>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2-03-18 591
33 유자란씨의 <이름씨>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2-03-07 823
32 정정지님의 <겨울 일기>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2-01-23 744
31 김세현 시인의 <립스틱이 지나간 자리>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10-27 692
30 박경화씨의 <반딧불이>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8-22 774
29 금이정씨의 <가시연>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8-20 699
28 답변글 금이정씨의 <가시연>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8-21 659
27 김세현씨의 <폭우>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30 659
26 금이정씨의 <매미>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18 599
25 김세현 시인의 <격포-달밤>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7 688
24 금이정씨의 <우리는 사자입니다!>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6 716
23 답변글 시가 무엇으로 쓰여지다니요?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4 687
22 박경화 시인의 <그대 떠나고>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1 911
21 권영호시인의 <홍수지다>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1 623
20 권영호님의 봄밤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4 575
19 답변글 제 비평에 대한 쓴 비평 달게 받겠습니다.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4 544
18 정정지님의 <동행>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1 554
17 이도원씨의 답변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1 804
16 이도원씨의 <저녁놀> 비평에 대한 대답과 질문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28 700
15 김세현씨의 <가로수>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4-17 629
14 서경애씨의 <낚시>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4-16 546
13 신진영씨의 절창 <환절기>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4-12 508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