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원의 소설 [내 생의 자명종]을 읽고, > 작품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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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의 소설 [내 생의 자명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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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자명종>에 대한 소견,

무려 1200매나 되는 장편을 나는 거의 단숨에 읽었다. 일단 독자가 지루해하지 않고 소설 속에 빨려들게 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성공적이다.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런 좋은 작가가 우리 동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찬사는 별로 의미가 없다. 함부로, 거칠게 흠을 잡아본다.


1. 제목이 무슨 뜻일까? 자명종이란 늦잠을 깨도록 정해놓은 시간에 울리게 한 시계의 종소리이다. 나를 깨우는 시계, 나의 삶을 끊임없이 깨우는 시계란 이 소설에서 무엇일까? 주인공의 자의식일까? 혼란한 시대일까? 결혼제도? 사랑의 부재? 알 수 없는, 심연으로부터 울려오는 어떤 불안한 종소리? 내 실존의 각성일까?..... 막연하고 자의적인 제목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이 소설의 화자(주인공)는 두 사람이다. 누구의 자명종인가?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자명종이라면 <내 생의...>라는 한정어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생의...>라는 에피세트도 진부해 보인다. 그냥 <자명종>이라면 모를까.

2. 인물들이 여럿 나오지만 한 사람의 독백처럼 느껴진다. 말하자면 <나(여자)>나 <나(남자)>는 겉으로는 두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그 캐릭터가 마치 동일인인 것처럼 너무 비슷하다. 그리고 여자의 애인(승균)이나 남자의 부인과 술집여자 등은 성격의 편차가 거의 없이 비슷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이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은 심하게 말하면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모두가 개성적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모두가 비슷해 보인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서사문학에서 말하는 인물간의 대립과 갈등이 약하다.

3. 소설의 캐릭터는 개성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이곳의 인물들은 개성적이긴 하지만 보편성은 약하다. 독자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느낌을 주게 하는 요소가 적다는 말이다. 내가 남자(혹은 여자)주인공 입장이었다면 나도 그런 행동을 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는 좀 약하다.

4. 이도원의 문장은 매혹적이다. 그녀의 소설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첫 번째 요소는 문장이다. 속도감이 있고 명징하다. 인물들의 의식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끌고 가는 문장은 이도원을 소설가로서 신뢰하게 한다.

5. 두 개의 화자시점을 통해서 이끌어 가는 서사구조는 등장인물의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질 우려를 불식하고 인물간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그러나 시점을 너무 정확하게(규칙적으로) 바꾼 것은 작위적인 느낌을 준다.

6. 사랑의 부재, 가족의 해체를 그리고 있는 작가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 시대와 사회 내부의 한 면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은 그 성격이 비범하고 매우 냉소적이다. 소설은 원래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인물에 대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개성적인 캐릭터를 요구하게 되는데 그것은 인물이 지닌 성격의 독특함(비범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물의 성격은 특별(비범 혹은 특이)하면서도 동시에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도 갖추어야 한다.

7. <나(남자)>가 자신의 이복누이를 강간하는 장면은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이복누이의 집안에 대한 <나(남자)>의 적의가 충분히 나타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근친에 대한 끔찍한 폭력은 당사자들에게 거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었을 터인데, 그 상처(남자의 경우 죄책감)의 묘사가 너무 생략된 탓인지 느슨한 느낌이 들고, 그래서 마지막에 이복누이가 화해의 전화를 해 오는 것이 좀 급작스러운 느낌이 든다.

8. 매우 지적이고 냉소적인 <나(여자)>와 부잣집 도련님 같은 승균이와의 관계도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승균이라는 인물에 리얼리티가 약하고 다소 관념적으로 보인다. 예컨대 승균이와 그의 약혼녀 간의 이야기, 돈을 뜯어내는 폭력의 세계가 어딘지 값싼 폭력영화에서처럼 <만들어진> 느낌이 든다.

9. 문학은 휴머니즘을 지향한다. 소설은 인간의 탐구이고 삶의 진정성을 모색한다. 그러므로 소설의 인물은 진정한 <인간>이며 휴머니즘의 중심에 서 있다. 원래 서사문학에서 주인공(인물)은 영웅(hero)이 아니었던가? 영웅은 저급한 인물에 대립되는, 민족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적 인물이지만 동시에 초월적 존재인 신에 대항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진정한 인간성 즉 휴머니티를 구현해야 한다. 우리가 소설에서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그를 옹호하는 소이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이도원 소설의 인물들은 휴머니티가 약해 보인다.

10. 앞에서 제기한 여러 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 이도원에게 경의를 보낸다. 1200매나 되는 장편을 불과 한 달만에 완성해 낸 이 작가의 힘이 놀랍다. 그리고 이 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긴장을 풀지 않고 이끌어 가는 능력은 이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도원은 충분히 신뢰할만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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