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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의 [중독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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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 19집에 실린 김세현 시인의 10편의 작품은 한 편 한편이 모두 토론할만한 것들이라고 느꼈는데, 이곳 홈페이지에 그가 다시 올린 것을 보고 읽을 때 잠깐 스쳤던 생각들을 얘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중독이란 어떤 독물에 의해 생체가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약을 비롯한 각종 약물, 술(알콜), 담배(니코틴) 등인데, 어떤 사람은 심지어 스포츠나 사랑에도 중독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게 확대하면 예술가도 중독자이고 연애에 빠진 사람도 중독자라 할 수 있겠지요. 뿐 아니라 번번이 낙선을 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빚을 얻어서라도 후보자 등록을 하는 정치 중독자, 노름에 전재산을 탕진하는 노름 중독자, 수십번 끊겠다고 결심을 하면서도 여전히 피워 무는 니코틴 중독자, 그리고 수많은 알콜 중독자...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수많은 중독자들이 있습니다. 아니, 넓게 말하면 우리는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중독자]의 혐의를 안고 있고, 오히려 그렇지 못하면 삶은 지루하고 권태롭고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 뜻에서 [중독자]란 예술작품에 가장 흔한 캐릭터의 요소이고 따라서 김세현 시인이 한 알콜 중독자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김세현 시인의 독특한 표현에 힘입어 매우 선명하게 독자들의 가슴에 살아옵니다. 그만큼 그의 묘사는 매우 날카롭고 치밀합니다.

[그는 중독되었다 끊임없이 품고 마시고 알콜이 갖고 있는 모니터의 빛과 회로에 걸려 그의 간과 뇌가 함께 꼬여 춤추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작품 속의 [그]가 왜 중독되었는가의 이유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중독]되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품고 마]십니다. 품고 마신다는 행위가 그에게 치명적인 것이 된다 해도 이미 그는 스스로 그것을 제어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지요. 그 결과 [그의 간과 뇌]는 [함께 꼬여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인체의 가장 중요한 중추라 할 수 있는 간과 뇌가 함께 꼬여 춤추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것들의 기능과는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시인은[알콜이 갖고 있는 모니터의 빛과 회로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 공감하면서도 약간 의아해집니다. 알콜이 갖고 있는 모니터의 빛 - 그것은 알콜이 가지고 있는 어떤 요소(혹은 독성이라고 해도 좋다)의 현상으로 드러냄을 말하고 있는데, 바로 그 빛과 [회로]에 걸렸다고 하니까 조금 복잡해진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니터는 내부의 정보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니터에서는 [회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회로]라는 용어를 씀으로 해서 보이지 않는 내부의 상황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지적 화자의 언표방식은 독자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습니다.

[술 취한 그는 발정난 고양이 보다 더 매혹적으로 울었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스무날을 연달아 울어 깊숙이 숨은 내 섬모의 세밀한 부분까지 취해 들게 했다]

[술 취한] 상태는 비일상의 상태입니다. 그의 울음(비일상의 행위)은 보는 이에 따라서 얼마든지 [발정난 고양이 보다 더 매혹적]일 수 있습니다. 술 취한 그의 울음을 왜 시인은 하필 [발정난 고양이 울음]에 비교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시인의 탁월한 시적 상상력을 느끼게 됩니다. 발정난 고양이..... 발정이란 생명체의 가장 본능적인 생명욕의 발현모습입니다. 수코양이를 부르는 [발정난 암코양이]의 울음은 마치 우주적 생명의 비의에 닿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원래 울음이란 살아있는 동물의 가장 치열한 자기표현형식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중독자는 발정난 고양이의 울음보다 더 매혹적인 울음을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울음을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스무날을 연달아 운다고 합니다. 그 처절함은 그리하여 [깊숙이 숨은 내 섬모의 세밀한 부분까지 취해 들게 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섬모]라는 몸의 가장 작고 미세한 부분의 미세한 부분까지 취하게 한다는 그 울음 앞에서 우리는 모든 판단을 중지할 수밖에 없고, 모든 감각을 정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엄청난 울음을 우는 그 중독자를 중독자이게 하는 그 술이란 무엇일까요?

[그에게 술은 생명수이고 예수고 부처다 자신과 세상의 불협화음을 건너는 환유의 강이다]

그에게 술은 [생명수]로서 더 이상 그 존재의 의미를 따져볼 성질의 것이 아닌,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과 세상의 불협화음을 건너는 환유의 강]이라고 합니다. 생명이란 우주의 현상 가운데 가장 신비한 질서, 엔트로피 증가에 반하는 힘이지요. 그것은 어찌보면 그 자체로 비극적입니다. 인간(생명)과 세계는 대립하기 때문이지요. F.헤벨은 우리의 인식은 자신과 세계가 대립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대자존재인 인간에게 세계는 대립하고 불협화합니다. 그러한 세계와 자아 사이의 불협화를 극복하게 해 주는 것 - 그것을 시인은 [환유의 강]으로서 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술에 관한 찬사는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옛날부터 찬란하게 회자되어 왔지요. 어쩌면 인간은 아폴로보다 디오니소스를, 이성보다는 감성을, 이곳보다는 피안을 끊임없이 꿈꾸어 왔으니 말입니다.

[그는 밥보다 술을 좋아 했으므로 스스로 표본실의 인체도가 되어 갔다 드러나는 힘줄의 사선은 지하 저 아래까지 뿌리를 내리고 그의 멍한 눈 속으로 사쿠라꽃이 되어 떨어지는 가벼운 그의 영혼이 보였다]

술 중독자가 술을 밥보다 더 좋아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므로 이 구절은 별로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태를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밥을 먹어 균형적인 영양을 취하지 않고 술을 마시므로 그의 몸은 메말라 표본실의 인체도처럼 말라갑니다. 몸이 말라간다는 것은 생명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뼈는 불거지고 힘줄이 돋아나옵니다. 생명을 유지하도록 피와 영양의 길 핏줄이 [지하]로 뿌리를 내린다는 말은 그러므로 그가 죽음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의 멍한 눈 속으로 사쿠라꽃이 되어 떨어지는 가벼운 그의 영혼]을 보면서 시인은 한없는 슬픔과 연민을 느낄 것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감정을 절제하고 그 사태를 잘 묘사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쿠라꽃이 되어 떨어지는 가벼운 그의 영혼이 보였다]는 이 중독자를 통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독자의 중독이라는 상황을 다시 한 번 생각할 때 그것은 결국 우리의 비극적인 존재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존재자의 존재조건이 결국 중독- 치명적인 상태에 이름 -된 것이고 따라서 시인은 바로 그러한 존재의 비극성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작품에서 중독자의 눈동자를 통하여, 중독자의 울음을 통하여, 인간존재의 비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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