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랑이란, 이해 관계를 떠나서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드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랍니다. 제 경험에 의한, 이성간의 사랑에 기준을 둔 탓일까요?
단 한 가지 좋아하는 점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다 사랑의 감정 속에 통합시키는 제 사랑법과,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그대의 사랑법은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군요. 그 진심이란 말이 무척 뜻깊게 들립니다.
시집살이 16년째의 맏며느리로서 제가 느낀 것은 고부간이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지긴 상당히 힘들겠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엔 시어머님께서 모든 일을 저의 입장에서 고려하시고 행하시며 그 어떤 잘못된 일도 당신의 탓으로만 여기시는데 과연 그런 시어머님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이런 이야기를 그저 사적인 저희 집 자랑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편협한 사고방식입니다. 시집살이 하는 며느리들, 혹은 맏며느리에게 주어지는 부담은 함부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며,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진 분들을 만나 편하게 시집살이를 하고 있으나 맏며느리로서의 책임감과 많은 일들은 늘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순간순간 우울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저보다 힘든 경우의 며느리들 입장과 심정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시어머님 편에서 겪는 고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이해는 일방적일 수만은 없기에.
시어른이 돌아가셨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서로 무심했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따스한 이별>이 참으로 <솔직한 고백>의 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눈물이 애정의 척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별난 시댁 식구들 때문에 부당한 경우를 당하고 서러웠던 제 친구는 친정의 작은아버님 장례식에서 엄청나게 눈물을 쏟으며 큰소리로 울었다고 합니다. 모두들 작은아버님을 무척 존경했나보다, 라고 하셨다더군요. 그야말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인간사이지요.
그 옛적 내방가사가 아니더라도 아직도 이 사회에서의 고부 갈등과 시집살이 애가는 잔존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