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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13 08:51

연분홍빛.....숨겨둔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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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님,자주 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그대의 이번 수필처럼 저도 똑같은 경험이 있기에 우리 한번 이야기나 나누어 볼까 싶네요.

저는 두 가지 경험이 있어요. 기대되죠? 후훟훗...재미있을지 어떨지...자,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첫째는 시아버님건.(아버님,죄송하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 여러 가지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옷과 일상용품들을 하나하나 들춰보고 태우기도 하고 간직하기도 하던 어느 날,시어머님과 이불장을 정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불장 밑에 있는 서랍 속 바닥에 깔린 신문지를 드러내고 새로운 종이를 깔려고 하는데 사진이 한 장 나왔어요. 시어머님께서는 눈이 어두우셔서 저를 주시며 무엇인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한참을 들여다 본 뒤,

"어머니,우리 아버님 사진이네요. 옆에는 형님들 중에 한 분이신가?" (저는 시누이님들이 워낙 많아서 젊은 여자와 함께 있는 사진 속 아버님이 마치 큰딸과 함께 찍은 듯 하였답니다.)

하며 어머님께 말씀드리니 돋보기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느닷없이 이불장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나왔으니...그것도...신문지를 들춰야만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사진이라면...어머님께서는 오랫동안 들여다 보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하 밉상꾼,영감쟁이...이거는 또 누구고...가만 잇서바라...아,알겠다...이 여자때문에 내가 집을 떠날라꼬도 했지...딸 다섯을 낳았을 때니...그런데 이 영감쟁이가 이거는 뭐할라꼬 여기다 숨가놨노? 어지간히 좋아했는갑네...더러버서...며늘아,이거 갖다 버리라,태우든지..."

점잖으신 어머님께서는 속을 다 내보이지 않으시고 그저 사진을 제게 주셨습니다. 뒤이어 듣게 된 아버님의 사진 속 술집 여자와의 로맨스는 아주 재미있기도 하고 어머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속상하기도 했습니다만 어머님은 그 시대의 남성들은 으례 그랬던 듯이 관대하였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태웠습니다. 제 뒤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이구,이 영감쟁이야...죽어서는 그 여자캉 한 살림 차릿능교?"

자,이번엔 우리 남편의 사진 한 장건. 이것은 아버님건과는 좀 마음의 비중이 다르겠지요? ^^

결혼 후 얼마 안 되었을 때,남편은 서류를 정리하며 다 쓴 수첩도 이제 필요없으니 모두 태우라며 내놓고 출근하였습니다. 영수증이니 뭐니 하나씩 태우며 조그만 전화수첩을 태우려는 순간 저는 그 속에 들어있다가 화형(?)을 당하는 불상사에 처한 이름들이 궁금하여 수첩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습니다. 대부분 제가 아는 친구분들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마악 불더미에 넣으려고 몇 장씩 찢어발기는 순간,수첩의 비닐 겉장 속에서 사진 한 장이 보이는 것이였습니다.

남편과 다정하게 찍은 묘령의 여자...미모는 결단코 저를 따를 수(ㅎㅎㅎ...^^) 없었지만 사진사를 향했을 두 사람의 눈빛은 천하에 둘도 없이 다정한 비둘기 연인 같지 뭡니까! 오호!! 저는 가슴이 싸아해지며 질투가 나기보다 애틋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그이에게 이런 낭만도 있었구나. 늘 이것을 가슴에 품고 다녔었겠지? 그런 서정이 있다면 내게 대한 마음도 믿을 만 하겠구나. 이 여성이 첫사랑이라면 인정해 주어야지...오늘 밤 어디 두고 보자...'

그날 밤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왜냐하면,저도 첫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나의 첫사랑 남자는 함께 찍은 사진을 어떻게 간직하고 있을까...언제 소멸시켜 버렸을까...많은 생각들로 이 바가지,저 바가지 긁을 틈도 없을 뿐더러...제가 워낙 초저녁 잠이 많아서...한 숨 자고 일어나면 대개 잊어버리기도 하기에...

다음날,저는 그 사진을 남편의 미혼시절 앨범에 꽂아 두었습니다. 저는 정말 사심없이 그 사진을 간직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소지시킨다고 첫사랑을 없앨 수는 없는 법...또한 그 사진을 간직하였던 남편의 한 여자에 대한 마음을 곱게 인정하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어느 초저녁 잠을 물리친 날...남편에게 앨범을 보여주며,

"이 청순하고 어여쁜 낭자는 뉘시온지요?"

저는 여염집 근엄한 어부인이 대청마루에 좌정하고 앉아 머슴을 호령하듯한 말투로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이 사진이 어떻게...여기...있노?!"

"나으리,제가 그리하였나이다. 일전에 불쏘시개용 수첩에서 검거하였습니다. 어디 해명해 보시겠나이까?"

저의 장난끼는 아주 극에 달하여 제 스스로 무슨 사극의 주인공이 된 듯 그의 눈을 쏘아보며 어깨를 으쓱이며 목에는 있는 힘,없는 힘 다 들여... 그때의 그 오만방자함을 우리 경남님이 보셨다면...아마...저랑 말도 하기 싫을 텐데...ㅎㅎㅎ...

남편의 다소 어색해 하면서도 당당한 해명이 저를 기분좋게 하였습니다.

"아,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사귄 여자친구야. 다섯 째 누나가 찍어줬지...그런데 없앴다고 생각한 것이 으째...이곳에 꽂아둘 필요는 없는데..."

"그래요? 그렇다면 첫사랑이시군요. 여기 그대로 두세요. 평생 간직하셔얍지요. 첫사랑의 그 풋풋함을 없애지 마시어요. 사진이 있고 없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까욧!"

저는 아주 마음씨 좋은 주인마나님처럼 무슨 큰 아량이라도 베풀 듯 굴었답니다.

그날 이후로 그 붉은 빛 우단으로 된 앨범을 누구도 들춰 보진 않았지만 그 사진은 아직도 그렇게 고이 간직되어 있답니다. 혹 그 어여쁜 낭자가 안다면 싫어할까요? 살아가는데 이 정도의 여유와 낭만,당당함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사랑의 형태가 어떠하였던지...

경남님...저는 비록 이루어지지 않았을 지라도 첫사랑의 마음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주 건강하고 평범한 한 여자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여기기에...저만의 생각일까요?

제 이야기 어때요? 재미 있었어요? 이 정도면 수필감 아닐까요?...그대의 또다른 작품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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