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애님 비평 정말 고맙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부분까지 문제점을 잘 파악해 주셔서
소설 쓴 보람을 느꼈습니다.
첫번째 지적하신
장정일의 시를 인용한 건 저도 걸렸습니다.
주제의식을 좀 더 분명히 하고자 빌린 건데
좀 정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나중에 들었습니다.
시점 이동에 대해선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쓴다면
굳이 들은 말이든 미루어 짐작하든 말이든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조금전 서경애님이
지적했듯이 작가의 드러나기가 정말
극명하게 노출되고 그러면 재미가 없어지니까요.
"아마 난 네가 아이를 낳을 때쯤이면......아이와 대면하는 것이 두렵다" 라고 했는데 여기선 '작은 따옴표가 잘못 찍힌것 같아요.
그렇군요. 이것 말고도 실수가 많습니다.
제 파일 복사해서 올린 게 여기서
편집이 안돼 다시 해야했는데
그대로 놔두어버려 보기가 불편하셨을 겁니다.
> 나는 변기 위에 앉은 채 창문에 귀를 바싹 갖다대고
> 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소한 거지만 창문쪽으로 귀를 귀울였다가 맞지 않을까요?
사소한 거 아닙니다. 맞아요.
그 뒤의 지적은 해명하고 싶군요.
가난하니까 그런 정도의 불편함은 참을 수 밖에 없고 주인여자의 경우, 세를 들이기가 힘드니까 , 자신도 이사를 가기 힘드니까
현실을 참을 수 밖에 없고 그 현실을 기도와 일탈(밤외출을 하는 여자에 대해 주인공이 남편과 같은 일탈을 하고 있다는 작가주관적인 생각)로서 버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자를 정신병원에 가두지 않고 뭔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게
바로 감시입니다. 애정이 있었다면 격리를 강구하겠지요. 그것이
그 모자에 대한 예의였을 겁니다.
그러나 알려지면 집값 떨어진다고 쉬쉬하고
노파가 동네를 청소하는 것으로
방기하는 것은 바로 감시의 재미,관음증의 재미를
한껏 누리는 것에 불과하지요.
주인여자를 부정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남편처럼 참을 수 없어 일탈을 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로 그리고자 했는데 설득력이 부족했는가 보군요.
시와는 달리 소설제목은
그렇게 은유적일 필요가 없다는 게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서경애님 친절한 비평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