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경이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식물도 강렬한 의지를 지닌 '생명체'라는 사실, 수백 년 한 자리에 붙박혀 사는 나무들도 저마다 일념으로 '지향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그처럼 생생하게 와 닿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십여년 전, 그날 파계사에 처음 갔었지요.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게 뻗은 나무들도 보기 좋았지만, 원통전 뜰 아래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왜 그렇게 눈길을 끌던지요. 그 나무는 저에게 下心과 佛性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수정하게 했습니다.
더 높이 오르려고, 더 많이 가지려고 세상은 저토록 아우성인데, 가만히 발아래 엎디어 낮은 곳에 사는 이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요. 바로 그런 분들이 부처님의 화현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판단하고 그의 생애를 가늠하는 척도는, 얼마만큼 높이, 그리고 많이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세상의 아픔과 얼마만큼 함께 했는가, 이웃과 얼마만큼 나누었느냐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고 몇 년 후, 파계사에 가 보았더니 이 일을 어쩝니까! 그 와송이 베어지고 말았지 뭡니까.
저마다 잘나고 힘있고 높아질려고만 하는 사람들만 늘어가고, 낮는 데로 임하여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각박한 현실의 상징같아 가슴이 서늘해졌지요.
그 후 다시는 파계사에 가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