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화씨의 <반딧불이>를 읽고,
캄캄한 밤에 소리 없이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의 불빛을 보면 참 신비한 느낌이 듭니다.
그 작디작은 불빛의 비행을 시인은 적막강산을 떠도는 <은빛 눈망울>로 표현합니다. 떠돌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는 눈, 모든 사물이 다 깊이 잠든 어두운 밤의 하늘을 무엇인가를 찾아 날고 있는 눈이지요. 그런데 그 찾는 대상을 이 시인은 <세상의 지름길 버리고/ 읽던 책 던지고/ 또 다른 빛>이라고 말합니다.
<지름길>이라는 편의성과 <읽던 책>이라는 세상의 가르침을 버리고 찾아가는 <또 다른 빛>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컨대 최고의 진리나 아름다움 혹은 신과 같은, 우리 세속적인 인간으로서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최고의 존재자가 아닐까요?
적막강산의 그 어둡고 조용한 밤하늘을 날다가 보면 예기치 않던 <거친 숲>이나 갑자기 적막을 깨고 세상을 흔들어 깨우는 <폭포>도 만나게 되는데, 반딧불이는 <떨어지는 별똥 벗 삼아/ 온몸>으로 반짝입니다. 별똥의 빛은 빠르게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자신을 소멸시키는 빛이지요. 자신을 소멸시키므로 아름다운 빛입니다. 반딧불이는 바로 그 별똥을 벗삼아 <온몸>으로 반짝입니다. 온몸으로 반짝이는 것이야말로 완벽하게 자신을 실현하는 것, 즉 존재자의 존재실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안개가 달마저 삼켜서 세계는 지금 <절벽 같은 어둠>입니다. 그런데 혼자서 적막강산을 떠돌던 반딧불이가 이제는 자기실현을 통해서 <적막강산>을 뒤집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대단한 상상력입니다. 그 작디작은 반딧불이가 그 거대한 우주인 적막강산을 <뒤집는다는 것!> 이 점이야말로 대단한 시적 자아의 놀라운 세계인식입니다.
그러나 사족을 붙인다면, <적막강산>이라는 그 절대적인 고요함 속에서 소리 없이 <또 다른 빛>을 찾아 날고있는 눈망울로서의 반딧불이가 주는 시각적 이미지에 갑자기 <폭포>가 등장해서 일으키는 굉음과도 같은 소리 이미지(물론 상상이지만)는 이미 적막강산의 <적막>을 깨뜨린다고 상상됩니다. 그러므로 그 작은 반딧불이가 강산을 뒤집는다는 놀라운 이미지는 사실은 <폭포>의 그 역동적인 힘이 이룩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이 시의 <반딧불이>의 작으면서도 놀라운 힘(적막강산을 뒤집는)은 폭포 이미지 때문에 가려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