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화 시인의 <그대 떠나고>에 대하여, > 작품을 읽고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작품을 읽고

|
01-07-01 21:55

박경화 시인의 <그대 떠나고>에 대하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전 체 목 록
그대 떠나고
박경화
저물녘, 흰나비 한 마리가
내 어깨 스쳐가네
그 잠깐동안의 고요가
온몸을 뒤흔드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누가 떠나가는가
흰나비 스쳐간 자리에
가만히 손 얹어보네


이 시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언어화 되지 않은 여백에 숨기고 있는 생의 의미를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인 <그대>가 떠나고 난 후의 텅 빈 허전함, 그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실존적인 정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 허전함의 시공을 <저물녘>이라는 시간 안에 감추고 있습니다.
저물 녘이라는 시간은 이제 하루의 시간이 다 지나간, 따라서 모든 가시적인 물상들이 의미의 공간을 넘어서 어둠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퇴장하는 시간입니다. 바로 그 때에 흰나비 한 마리가 어깨를 스쳐갑니다. 여기서 흰 나비는 아주 연약하고 가벼운 존재이지요. 그것은 화자에게는 아무런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화자는 다만 그것이 어깨를 스쳐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물녘에 흰나비 한 마리가 나의 어깨를 스쳐가는>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대단히 의미심장한 우주사의 한 장면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그의 섬세한 감성으로 절실하게 느낍니다. 나비 한 마리가 지나가는 잠깐의 고요가 자신의 전 존재(온몸)를 뒤흔드는 것은 그래서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그 진실함이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지요.
<그대>가 떠났으므로 한없이 쓸쓸한 것은 아니라고 화자는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 담담하게 버티었을 것입니다만, 나비 한 마리의 스침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대의 부재 공간은 화자에게 그의 존재에 대한 위협이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누가 떠나가는가>라는 구절은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한 실존적인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그 질문은 대답할 수 없는 근원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누구나 침묵으로 그 질문을 견뎌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다음 장면에 화자가 <흰나비 스쳐간 자리에 가만히 손 얹어보네>라는 동작이 우주적인 울림을 주는 것입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TAG •
  • ,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목록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73 물빛 벗님들, 속삭여 주세요 초인별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6 706
72 금이정씨의 <우리는 사자입니다!>를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6 1012
71 답변글 금이정씨의 <우리는 사자입니다!>를 읽고,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7-07 629
70 답변글 금이정씨의 <우리는 사자입니다!>를 읽고,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7-07 659
69 우리는 사자입니다!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7-05 904
68 답변글 나는, 사자가 아닌 유도화 잎사귀 메나리토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5 801
67 답변글 나는, 사자가 아닌 유도화 잎사귀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7-07 794
66 답변글 동문서답일지라도...... 메나리토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7 832
65 시는 무엇으로 쓰여지는지...... 별빛꽃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4 876
64 답변글 시가 무엇으로 쓰여지다니요?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4 928
63 답변글 그럼 저도 시인이란 말입니까? 야호~ 별빛꽃 올림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4 650
62 답변글 우리는 사자입니다! 인기글 이도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5 1126
61 답변글 우리는 사자입니다!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7-07 905
60 답변글 양보라니요? 제가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이도원 이름으로 검색 2001-07-08 852
59 답변글 금이정씨 글 잘 읽었습니다. 인기글 정정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7 1059
58 답변글 금이정씨 글 잘 읽었습니다.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7-07 854
57 곳간열쇠와 바뀌게된 손자 박경화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3 871
56 답변글 곳간열쇠와 바뀌게된 손자 정정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3 786
55 (이응로 1,2,3 )을 읽고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7-02 855
» 박경화 시인의 <그대 떠나고>에 대하여,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1 1072
53 권영호시인의 <홍수지다>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7-01 788
52 권영호님의 봄밤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4 825
51 제 비평에 대한 쓴 비평 달게 받겠습니다. 이도원 이름으로 검색 2001-06-01 769
50 답변글 제 비평에 대한 쓴 비평 달게 받겠습니다.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4 710
49 정정지님의 <동행>을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1 709
48 답변글 정정지님의 <동행>을 읽고, 정정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2 695
47 이도원씨의 답변을 읽고,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6-01 1039
46 서경애라는 이름의 나무에게 서경애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30 761
45 이진흥님의 질문에 답합니다 이도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28 789
44 서경애라는 이름의 나무에게...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5-28 696
43 답변글 서경애라는 이름의 나무에게... 정정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30 710
42 이도원씨의 <저녁놀> 비평에 대한 대답과 질문 인기글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28 1000
41 정정지님의 <화산>을 읽고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25 650
40 답변글 정정지님의 <화산>을 읽고 정정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30 710
39 이진흥님의 <저녁놀>을 읽고 이도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22 864
38 역시 스케일 큰 김세현의 <미포의 달을 마시다> 읽고 이도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16 737
37 다시 읽어본 논문... 김홍숙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5-05 735
36 금이정씨의 힘일 겁니다 이도원 이름으로 검색 2001-04-27 728
35 고마우셔라 도원씨...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4-27 841
34 신진영씨의 대숲을 기다리며 금이정 이름으로 검색 2001-04-27 777
33 대숲! 그걸 먼저 품어버리다니... 신진영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4-25 687
32 금이정님은 대숲에서 무서운 비밀 하나를알게되었다 이도원 이름으로 검색 2001-04-25 728
31 손희경씨의 <예감> 서경애 이름으로 검색 2001-04-23 664
30 김세현씨의 <가로수>에 대하여,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4-17 940
29 답변글 김세현씨의 <가로수>에 대하여, 인기글 서경애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4-18 1126
28 서경애씨의 <낚시>를 읽고, 이진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1-04-16 875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