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는>
출근길 모두들 개를 보았다. 개는 작고 순해보였고 어린 성냥팔이처럼 떨고 있었다. 말기환자가 고단한 손을 올리듯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릴 때마다 흐린 눈빛이 흔들렸다. 정류장에 있던, 정장을 하고 신문을 들고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개를 보다가 언짢은 표정으로 훌쩍 버스에 오르곤 했다. 허름한 점퍼를 걸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가다 멈춤 때까지, 개를 안고 갈 때까지. 잠시 평온이 흘렀고 문득 그의 남루襤樓는 허기를 연상시켰다. 끔찍한 상상이 도끼를 들고 화들짝, 사람들을 찍었다
의심이 오기 전까지… 남자는 성자였다 모든 환상이 그러했듯이
<바닷가>
모래알은 뜨겁고 살찐 갈매기들은 날개 짓이 둔했네 튼튼한 아이들은 어지럽게 발자국을 지우고 하얗게 헹궈진 햇빛은 눈부신 빨래처럼 지붕에 널렸네 해풍은 희뜩희뜩 여자들의 허벅지를 만져 그물을 손질하던 남자들은 소주를 마시며 낄낄거렸네 자, 다리나 뜯자고
짖지 않는 개가 배를 깔고 길게 누운 한낮, 졸린 눈 속으로 파도는 감겨오고 감겨오고 감겨오고
<엽서>
그날 낡은 驛舍에서 오래 기다렸다고…
우리가 꿈꾸던 사랑은
汽笛 같은 꼬리를 남긴 채 떠나고
빙 돌아 놓쳐버린
청춘은 터널처럼 외로웠다*
추억은 밤차보다 길게 덜컹거리고
어두워지려는 창 밖
겨울비로 내리는 엽서를 읽는다
사람아
차창너머 마주친 눈빛인 듯, 우리
멈췄다 떠났었네
*네루다, 한 여자의 육체 中,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