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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장 이야기


그 여름
옻골마을엔 눈도 코도 없는 것이 담을 넘었다

부추 가지 박에다 배추 고추 찰밥을 넣고 엿기름으로 골고루 버물어서 등겨를 덮어 하루동안 푹 삭히고
다시 누룩가루와 밀띠운 것을 넣어 은은하게 달이면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넘쳐났다 

외할머니 품속같이 쿰쿰하고 들적지근한 것을 한 입 가득 넣으면 술술 넘어가 속이 편안하다

촌부처럼 겉은 거칠고 칙칙해도 속은 넉넉하고 깊어 식혜와 함께 귀한 손님상 위에 올랐다
 

만들 때마다 재료에 인심을 꽉꽉 채워 넣으니

여름이면
손도 발도 없는 것이 골목을 돌아다녔다


집장: 옻골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음식으로 여름에 채소가 흔해지면 만들던 반찬 종류다


평온한 하루

하얀 모란이
쟁반 같은 꽃을 피운지
겨우 사흘
간밤 내린 비에 다 떨어지고

동생과 자식 위해
개미처럼 살다
모처럼
허리 펴던 그녀가

세상 참 우습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어젯밤
이른 소풍을 접었다

긴 가뭄에 목메던
농부는 어젯밤 내린 비로
고추 모종 심고

강남 갔던 제비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겨울 텃밭

앙상한 가슴 열어
퍼질러져 있는 텃밭

퉁퉁 불은 젖
시원하게 빨아올리던
여린 것들 다 보내고
울퉁불퉁 거친 살갗 칼바람에 찢긴다

앵앵 거리며 보채던 벌,
살랑 되던 나비,
수시로 들리던 발걸음 소리마저
멎은지 오래

물기 빠진 눈으로
하릴없이 구름 쫓다
멍하니 햇살에 몸 맡긴다

계절의 끝자락
해가 서산에 걸리니
황량한 가슴에
허공 깊은 여운이 맴돈다



달리아 피면
 

아침 상식을 올리다 천장이 날아갈 듯 반나절을 통곡한 적이 있다

초상 때 우는 것은 제 설움 때문이라지만
그날따라 매미가 유난히 울었고
그날따라 상식에 올린 반찬이 빈약했고
그날따라 집에는 나 혼자였다

겨울 채비로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달리아 뿌리를 캐다 지난날 나를 돌아보니
삼시 세끼 밥만 할 줄 아는 청맹과니였다
하늘과 땅이 붙어 있다는 걸 몰랐다

죽음도 태어날 때처럼 나이가 있다면 어언 장년이 되었다
이젠 그때의 기억도 낡아 희미해졌지만

달리아 피면

마당 가득 꽃을 가꾸시던 어머님이 생각나 아직도 가슴이 저리다




화두 하나 걸머지고
갓바위 오른다
늦가을
길을 덮은 낙엽의 비명에
몸을 낮추고
헉헉 연신 뜨거운 입김을 뿜어낸다

떨리는 다리 재촉하며 정상에 오르니
발아래 굽이굽이
등뼈 보이며 엎드린 산
제 몸에 나온 것을 떠나보내느라
울그락 불그락 몸살을 하고 있다

겉이 저 모양이니 속인들 온전할까
해마다 치르는 이별도 저리 아픈데
다시 올 수 없는 그 길
어찌 갔을까
어찌 갈까
무덤덤한 부처님 얼굴 위로 

낙엽 하나 툭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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