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39집 원고 (곽미숙) > 토론해봅시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토론해봅시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전 체 목 록

집장 이야기


그 여름
옻골마을엔 눈도 코도 없는 것이 담을 넘었다

부추 가지 박에다 배추 고추 찰밥을 넣고 엿기름으로 골고루 버물어서 등겨를 덮어 하루동안 푹 삭히고
다시 누룩가루와 밀띠운 것을 넣어 은은하게 달이면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넘쳐났다 

외할머니 품속같이 쿰쿰하고 들적지근한 것을 한 입 가득 넣으면 술술 넘어가 속이 편안하다

촌부처럼 겉은 거칠고 칙칙해도 속은 넉넉하고 깊어 식혜와 함께 귀한 손님상 위에 올랐다
 

만들 때마다 재료에 인심을 꽉꽉 채워 넣으니

여름이면
손도 발도 없는 것이 골목을 돌아다녔다


집장: 옻골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음식으로 여름에 채소가 흔해지면 만들던 반찬 종류다


평온한 하루

하얀 모란이
쟁반 같은 꽃을 피운지
겨우 사흘
간밤 내린 비에 다 떨어지고

동생과 자식 위해
개미처럼 살다
모처럼
허리 펴던 그녀가

세상 참 우습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어젯밤
이른 소풍을 접었다

긴 가뭄에 목메던
농부는 어젯밤 내린 비로
고추 모종 심고

강남 갔던 제비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겨울 텃밭

앙상한 가슴 열어
퍼질러져 있는 텃밭

퉁퉁 불은 젖
시원하게 빨아올리던
여린 것들 다 보내고
울퉁불퉁 거친 살갗 칼바람에 찢긴다

앵앵 거리며 보채던 벌,
살랑 되던 나비,
수시로 들리던 발걸음 소리마저
멎은지 오래

물기 빠진 눈으로
하릴없이 구름 쫓다
멍하니 햇살에 몸 맡긴다

계절의 끝자락
해가 서산에 걸리니
황량한 가슴에
허공 깊은 여운이 맴돈다



달리아 피면
 

아침 상식을 올리다 천장이 날아갈 듯 반나절을 통곡한 적이 있다

초상 때 우는 것은 제 설움 때문이라지만
그날따라 매미가 유난히 울었고
그날따라 상식에 올린 반찬이 빈약했고
그날따라 집에는 나 혼자였다

겨울 채비로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달리아 뿌리를 캐다 지난날 나를 돌아보니
삼시 세끼 밥만 할 줄 아는 청맹과니였다
하늘과 땅이 붙어 있다는 걸 몰랐다

죽음도 태어날 때처럼 나이가 있다면 어언 장년이 되었다
이젠 그때의 기억도 낡아 희미해졌지만

달리아 피면

마당 가득 꽃을 가꾸시던 어머님이 생각나 아직도 가슴이 저리다




화두 하나 걸머지고
갓바위 오른다
늦가을
길을 덮은 낙엽의 비명에
몸을 낮추고
헉헉 연신 뜨거운 입김을 뿜어낸다

떨리는 다리 재촉하며 정상에 오르니
발아래 굽이굽이
등뼈 보이며 엎드린 산
제 몸에 나온 것을 떠나보내느라
울그락 불그락 몸살을 하고 있다

겉이 저 모양이니 속인들 온전할까
해마다 치르는 이별도 저리 아픈데
다시 올 수 없는 그 길
어찌 갔을까
어찌 갈까
무덤덤한 부처님 얼굴 위로 

낙엽 하나 툭 떨어진다


TAG •
  • ,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목록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39 꼬깜카페/곽미숙 1 해안121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2-13 372
638 묵직한 그림자 1 하이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2-13 220
637 깃발을 받아들고 / 정정지 1 목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2-13 176
636 왼손ㅡ김미숙 2 팔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2-12 172
635 멀고도 가까운/ 이규석 1 cornerle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1-08 305
634 불을 쬔 듯 / 전 영 숙(932회 토론작) 1 서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1-07 231
633 억새밭 / 정정지 1 목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1-07 162
632 (제932회) 자기 보호 -김미숙(팔음) 1 팔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1-07 171
631 여름밤 1 해안121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25 170
630 제931회 정기 시토론회/ 견딘다는 일/ 조르바 1 조르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25 141
629 대가 ㅡ김미숙 1 팔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25 133
628 힘을 다 빼고 오는 / 전 영 숙(931회 토론작) 1 서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25 178
627 말이 시시하다 1 하이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25 328
626 39집 원고-남금희 수정본 & 서문-김주희 선생님께 조르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7 138
625 39집 원고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7 129
624 만약에 / 전 영 숙 (930토론작) 1 서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164
623 10월 토론작 - 근기, 그 위대한 힘 1 팔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135
622 토론작, 독도 가라사대 / 이규석 1 cornerle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167
621 제930회 정기 시 토론회/ 해우소에서 만나다/ 조르바 1 조르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171
620 물빛 39집 원고(남금희) 조르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162
619 맨발로 오르다 / 고미현 (930회 물빛 토론작) 1 침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166
618 물빛39집 원고 박수하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187
617 토론작. 꽃의 프로포즈 1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140
616 안부 (930회 토론작) 1 하이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236
615 물빛 39집 원고 (고미현)- 수정 침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0 255
» 물빛39집 원고 (곽미숙) 해안121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0 145
613 물빛 39집 원고 (이규석) cornerle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0 174
612 물빛 39집 원고 (전영숙) 서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09 146
611 물빛 39집 원고(정해영) 하이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09 120
610 물빛 39집 원고 (정정지) 목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03 166
609 ★물빛 39집 원고- 팔음 김미숙★ 1 팔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9 196
608 핏빛여명 ㅡ팔음 2 팔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7 474
607 살패의 원인 1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7 130
606 반가사유 / 전 영 숙 (929회 토론작) 1 서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7 221
605 제929회 정기 시토론회/ 가을신전/ 조르바 1 조르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7 152
604 왕의 귀환/곽미숙 1 해안121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7 186
603 꿈 나들이(2) / 이규석 1 cornerle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7 242
602 부끄럽다 1 하이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7 193
601 가마솥 햅쌀밥 / 정 정 지 1 목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27 158
600 꿈 나들이 /이규석 1 cornerle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13 184
599 부추 꽃 피어 / 전 영 숙(928회 토론작) 1 서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13 233
598 제928회 정기시토론회/ 말 나무/ 조르바 1 조르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13 153
597 집장 예찬 ㅡ곽 미숙 1 해안121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13 139
596 강을 빌리다 1 하이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13 123
595 우리 옷ㅡ한복 (팔음김미숙) 1 팔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13 143
594 마지막 인사 / 정정지 1 목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9-13 17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