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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

 

 

전 영 숙

 

가만히 내리 뜬 눈에

긴 속눈썹

 

무한허공과

긴 기다림

만나지 못한 슬픔까지

올려놓았나

둥글게 휘어 있다

 

저 날아갈 듯한 곡선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무게를 견뎠을까

오랜 불면의 밤을 지켰을까

 

어김없이

너무 늦거나 이른 걸음에

어긋나고 만 인연을

긴대 끝에 피워놓고 앉아 있는

꽃무릇

 

왜 무엇이 이토록

헤메이게 하는가

흔들리는 그림자를 밟고

끝없는 물음에

휩싸여 있다

 

 

       

부추 꽃 피어

 

전 영 숙

 

뒷마당 가득

흰 별 떠 있다

 

크고 작은 행성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부딪히지 않고

한 계절 돌고 있다

 

반짝이는 은하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를 따라가며

그 옛날 당신과 함께

이름 지었던 별을 본다

 

몇 억 광년 떨어진 녹슨 별 두 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떠도 져도

만날 수 없는 거리

 

모여 있어도 낱낱이 외로운 공중

무섭지 않게 무섭지 않게

뒷마당 가득

아주 낮게 뜬 별

 

 

 

 

 부드러운 돌

 

 

전 영 숙

 

그날

당신이 쥐어 준 비누 한 장

크고 단단하고 향기로웠다

 

매끄러운 촉감

새하얀 거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매일 사용했다

물 쓰듯 펑펑 썼다

 

써 본 사람들은 모두

아껴 쓰라 했지

비누는 돌이 아니라며

 

거품은 거품끼리

부풀었다 꺼지며 

손끝에서 사라져 갔는데

 

거품 일구기 바빠

비누 닳는 줄 몰랐다

 

미끄러지고 넘어진

일생

평생 닳지 않는

부드러운 돌인 줄 알았다

 

 

 

 

12월처럼

 

 

전 영 숙

 

전화번호부에

지우지 않은 이름

버리지 못한 옷처럼

걸려 있다

 

오래 전

기억조차 가물 한 이름에서

얼마 전 떠난 이름까지

 

산자와 죽은 자

뒤섞여 있는

연락처

 

이 세상 사람은

쉽게도 지우는데

저 세상이 된 사람

지우지 못해

문득 문득 일별한다

 

그리운 이름

검색창에 넣으면

익숙한 여러 개 숫자

생전의 연결 번호

 

받지 않을까봐

누르지 못한다

받을까봐

가슴 두근거린다

 

그 많은 숫자 다 보내고

한 장 남은 12월처럼

다정한 번호 모두 지우고

적막해진다​

 

 

 

가벼운 힘

 

 

전 영 숙

 

봄볕 속에 쪼그리고 앉아

연한 싹 헤아린다

받아먹은 볕으로

벌써 입속이 볼록한 싹들

 

돋아 내미는 저 작은 표시가

한나절 가슴 두근거리게 한다

 

순식간에 푸른 생명에

휩싸일 나무의 가슴은 또 얼마나 뛸까

 

소리 없이 가만히

대지를 하늘을 그 사이 만물을

들어 올리는 저 가벼운 힘

 

나비가 날고 벌이 난다

작고 여린 생명들로

커지고 넓어지는 봄에는

 

내 등에도

푸른 싹이 나올 것 같아

햇볕에 내어 놓는 날 많다

 

 

     

   

흰 봄

 

 

전 영 숙

 

목련이 핀다

골목에 공원에

꿈속에

크고 희고 둥근

말이 핀다

 

오래 머금어

온전히 녹여낸

아직 세상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말

 

고개 들어 바라보면

절로 고개 숙이게 하는

발밑 그늘까지 눈부셔

 

내 말 내 어둠

숨을 데 없다

숨길 데 없다

꽃 밖 멀리까지

흰 봄이 벌어지고 있다

 

 

       

 

꼬리 살짝 올라간

 

 

전 영 숙

 

쓰레기 버리다 돌아보니
맑은 초승달이

전봇대 뒤에 걸려 있다

꼬리 살짝 올라간 저 입매 때문에
꽃이 피고 고양이는 새끼를 낳고

사람들 집에 불이 켜진다

공터에 흩어진 달빛을

검은 비닐봉지 벌려 차곡차곡 담는다
무게와 부피가 허공 만큼이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밤마다 달이 쏟아내는 쓰레기는

모두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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