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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팔음) 김미숙

 

 

읍내 오일장 서는 날

새벽밥 지어 놓고

십리길 나선 엄마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용바우재 넘어간다

 

이리저리 해종일 보내다가

산 그림자 길게 내려오면

엄마는 보따리 이고 지고

험준한 고갯길 넘느라

작은 키가 더 작아진다

 

바다가 없는 산골 마을

저녁 밥상에 노릇노릇 구워 놓은

고등어 한 마리에

여섯 식구 얼굴들이

달빛처럼 환해진다

 

 

 

*용바우재: 경북 상주 화동면 소재.

반곡리에서 보미리로 넘어가는 가파른 고갯마루

 

 

 

 

 

 

 

 

 

두부 의례식

 

 

두부를 먹는다

 

하늘 찌를 듯 치솟는 물가

반찬값이라도 보태려고

남편 몰래 투자한 동학개미

 

바닥인 줄 알고 샀는데

지하실이 있었다

며칠 지나자 지하실에서

벙커로 떨어졌다

 

길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호재가 뜨고 

음봉에서 양봉으로 역전한 주식

폭포수는 불기둥으로 변신했다

 

물려있던 주식

시원하게 털어버리고

남몰래 졸이던 마음 속죄하듯

두부 먹는다

 

 

 

 

 

 

 

 

 

 

부부 사랑

 

샛강에서 낚시를 한다

길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낚아 올린 탱탱한 손맛

 

큰 기쁨도 잠시

잡은 고기는 어망에 넣고 

눈과 마음은 다시 물속

고기를 ()는다.

 

남녀 사랑도 다르지 않아

결혼한 순간 이미 반은 날아가고

나머지 반도 오래지 않아 식어서

서로가 찬밥 신세가 된다

 

손 떨리는 사랑도 잡고 나면

어망 속에 든 물고기 바라보듯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아

그냥 눈이나 맞추고 산다

 

 

 

 

 

 

 

 

 

 

 

 

 

낭만 할배

 

 

왼손은 지팡이 짚고

오른손은 할아버지 손잡고

불편한 다리를 한 발 한 발 움직이며

더디게 걷는 할머니

 

할머니 걸음에 맞춰 

비탈진 길을 걷는 할아버지

메고 있는 장바구니에

유월 땡볕 쏟아지고 있다

 

남천나무 하얀 꽃

흐드러진 한낮

집으로 가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잡은 손 잠깐 놓고

남천 꽃가지 한 움큼 꺾어다가

할머니 코앞에 대어주는

할아버지

 

다시 손잡고 느릿느릿 

언덕길을 오르는데

어디서 온 나비 한 마리

할머니 머리 위로 날아간다

 

 

 

 

 

 

 

 

우리 옷

  

 

외인아파트 놀이터

이른 아침부터 시끄럽다

 

우리 옷 차려입은

아이들 웃음소리

 

지칠 줄 모르는 

꽃과 나비들의 군무

 

즐거운 명절 아침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날아갈 듯 고운 한복

어여쁜 얼굴들이

 

우리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조선의 내일을 환하게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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