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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챗살

작성자:해안작성시간:17:08  조회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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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챗살

터앝에
상추 깻잎 토마토 우엉 가지 고추를 심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땅이 시끌벅적합니다

어느 해 겨울
온 식구가 부챗살로 누워 자던 때가 생각납니다
묵묵히 부챗살을 만드는 아버지의 손길은 엄중했고 아랫목은 따뜻했습니다
엄마품이 그리운 셋째는 속울음을 삼키다
살얼음 같은 큰언니 옆에서
젖은 낙엽으로 자야 했습니다
지금도 나는 차렸자세로 잠이 듭니다

맵고 달콤하고 쌉싸름한 그 방
격자무늬 벽지가 있는 그 방엔
항상 당신이 있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터앝도 조용합니다
어깨를 누르는 토마토의 긴팔에 옆자리 고추가 노랗게 질려있습니다
내년엔 자리를 바꾸어 볼까 합니다



어떤 선물

밤 사이
때늦은 한파에 꽁꽁 언 제랴늄

윗둥을 잘라내고
못난 자식 챙기 듯
옆에 두고 물을 줬더니

벼랑을 기듯
한잎 두잎 힘겹게 올라와
피처럼 붉은 꽃을 토해낸다

얼핏 잎 사이
오랜 병마를 견뎌낸 그녀가 보인다

다 포기했던
남은 생을 덤으로 받았다며
하늘도 새도 길가의 작은 꽃도
커다란 선물로 다가와

이제부터
남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던 그녀가
꽃이 되어 웃는다

벼랑의 끝을 걷다
돌아온 이들의 밤이 밝다



바람의 초대

그곳에 가면

산딸기로 초롱불 켜고
앵두가 예쁜 입술로 노래하고
애기똥풀 제 신명에 겨워 춤을 춘다

불쑥 찾아온 여름에
놀란 오디가
선들바람에 후드득 떨어지자
너도, 나도 한 움큼 주워 입에 넣으니
말 할 때마다 보랏빛 향기가 흐른다

보릿고개 땐
아이들의 주식이 되기도 했을
넉넉한 한상차림

모든 걸 다 주고도
더 못 줘서 미안해하던 엄마같이
갈 때마다 가득가득 담아주는
옻골 뒷산은 매일 잔치다

오늘도
바람이 살짝 초대장을 주고 간다



또 그렇게 잊혀지고

툭툭
꽃망울 터지더니
옻골은
온통 분홍빛이다

미동댁 능성댁 교동댁이
잠든 골짜기에도
분홍 물이 들어 있다

먼 옛날
동네를 평풍처럼 두른 골짝마다
전설이 이름되어
누군가를 숨겼다 해서 신기듬
옻나무가 유난히 많아 옻고개
못안골 새갓 서쩍골 진등골 백사등 골안골 검덕골 황사골

종일
햇살 품은 골짝을 누비던
그 많던 병(秉)) 돈(敦)기(基)
숙이 자야 옥이... 민들레 꽃씨로 흩어지니
온 동네를 떠돌던 골짝 이름도 서서히 사라진다

거북바위에 올라
허공에 큰소리로 불러본다
곽미숙
멀리서 되새김하는 소리
꿀꺽 바람이 삼키고

오늘도
해는 못안골을 넘는다



늦깎이 친구

텃밭을 일군다
오래 묵혀
돌과 자갈이 더 많은 땅

입 꽉 다문 흙을 달래며
깊숙이 묻힌 돌까지
하나하나 골라내니
땅이 제법 나긋나긋하다

땅거미 내려 돌아보니
오후 내내
일군 밭이 한 평도 안 된다

생각하니
몇 십 년 피로 키워도
내 것이 아닌데
반나절 꼼작거리니
작은 텃밭 하나 생겼다

상추씨 뿌리면 상추 나고
콩 심으면 콩 나오니
느지막이 친구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허리펴고 일어나
돌밭에 날 다친 호미
고이 씻어 걸어둔다


붉게 물든 그말


유리창에 부딛힌
차가운 바닥에 떨어졌다

그옆을 지키며 울고있는
또 한 마리의

나무는 잎새 하나 툭 떨구고
하늘만 쳐다본다

깨어나라 깨어나
이제 그만 일어나라
언젠가
그녀를 향해
수 없이 되뇌이던 그 말

오늘 다시
붉게 차올라
맞잡은 손 바르르 떤다

서서히 움직이는 날
두마리
가뭇 사라진다

건물사이
파아란 하늘이 촉촉히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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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자와 새자를 넣으면 글을 쓸 수 없다하여 마지막 '붉게 물든 그 말은 '그 두자를 뺐습니다.  여기 들어오니 수정도 안됩니다
    컴퓨터가 작동이 안되어 전화기로 하려니 그런가 봅니다. 교수님  '붉게 물든 그 말'은 이번에 안 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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