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곽미숙
옛날에
매화 향기 그윽한 집에
여우와 곰이 살았습니다.
곰은 부지런하고 깔끔한 여우를
사랑했어요.
솜씨 좋은 곰은
여우의 옷도 직접 만들었어요
자신이 만든 새 옷을
입힐 때마다
맵시 좋은 여우에게 또 반했지요
장롱엔 여우 옷만 가득했어요
하지만 여우는
느릿느릿 한 곰을 답답해했어요.
곰이 애교를 부리면 못 본 체 고개를 돌렸지요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곰을 몰아붙였어요 그래도 곰이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밤
사랑채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어요 가만히 귀 기울어 보니
낮에 여우가 다녀온 길을 밤이 늦도록 곰과 함께 걷고 있었어요
또 이른 새벽이면
여우는 도랑에 가서
곰의 흰 고무신을 씻었어요
몸이 불편해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곰의 나들이를 위해서였지요
이젠 곰도 여우도 사랑채도 사라지고
댓돌 위에 반짝이던 하얀 고무신도 없지만 곰처럼 지혜로운
어머님이 심어 놓은 매화가 옛이야기 들려줍니다
마당 구석진 곳에서
늦어 막이 피는 우리 집 매화는
매일 바람으로 몸단장하고
잠깐 머무는 햇살을 기다립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온
해님과 함께 떠날 여행을 위해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