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면 누군가 따라 오고 있는 것 같아요 보이진 않아요 차를 타고 가면 차를 타고 쫓아와요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가라고 하면 가는 신호등의 지시처럼 말할 때도 누군가가 원하는 말을 하게 돼요 이건 아닌데, 라고 썼다가 찢어버렸어요 벌금 물릴까봐 누군가의 입맛에 맞추고 있는 나를 봐요
빵도 양념통닭도 원조할매 감자탕도 어딜 가나 똑같은 맛이에요 집 떠나 살아도 불편할 게 없어요 같은 회사가 같은 아파트를 계속 지어서 너나없이 몸 포개는 위치도 같아요 오, 그렇다면 우린 같은 형제 그런데 통일을 좋아하나 봐요 꿈에도 소원은 통일 수상하면 신고 정신 들쭉날쭉한 사람들은 보기 싫은가 봐요
어둠 속에서 환히 들키고 있어요 내가 움직이면 어둠은 밀리는 척하지만 더 캄캄한 어둠에 먹히고 말아요 한 점 빛의 감옥 안에서 오늘도 무사히 나 살아 있나 봐요
시의 내용이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셨나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의 이미지를
오늘날 우리를 옭아매는 여러 가지 구속과 제약의 문제와 엮어서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감시망, 획일화된 사고를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 '화딱지'가 나서 써 본 시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제품'은 똑같이 공장에서 쏟아져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작품'은 작가 속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대자적 존재로서 '無'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고
그래서 무엇이든 내가 선택하고 또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이 뒤따르는 것이고,
그 불안은 곧 실존의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불안한 것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영화 <태양은 외로워>의 여주인공(모니카 비티)의 무표정한 표정이 오히려 더 사태의 불안이나 긴장미를 보여주는 경우를 예로 드셨습니다.
1연에서 "이건 아닌데, 라고 썼다가 찢어버렸어요"를 빼도 될 것 같다고 조언(서강님).
"신호등의 지시처럼 말할 때도 누군가가 원하는 말을 하게 돼요"에서
예컨대 신호등의 지시를 '착하게 따르는 시민처럼'이라는 말이 있어야 "말할 때도 누군가가 원하는 말을~~~"과 연결이 자연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캄캄한 세상에 빛의 감옥 안에 살고 있는 화자의 자아의식이 드러나 있어서 괜찮은 작품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