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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집 원고(정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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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분홍 얼룩


길은 기다렸다
꽃잎이 떨어지기를

겨우내 얼었던
갈라지고 벌어진 틈새
살랑, 메워 줄 낱말

포르르
꽃잎인 줄 알았더니
새소리 떨어진다

떨어지는 자리를
알 수 없는 꽃잎
바닥을 치는 절망들

꽃잎의 자리는
어디일까
모든 곳에 닿아도
모든 곳에 없어

길의 가슴에
흰 분홍 얼룩 그리운
봄날이다





머리카락 미인

정해영

등에 붙은 흰 머리카락을
떼어주다가

스무 살적
그의 어깨너머 떠오르는
푸른 앞날을 보았다

겨울 아침
언 손이 펴지지 않았을 때
셔츠의 단추를 채워 달라던,
그 때는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머리를 빗을 때면
아직도 귀속에 살고 있는
머리카락 미인이라는 말
평생 빠져 나올 수 없는 바다였다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아도
먼 훗날 세월이 일러 주었다
허우적거리던 그 옛날을
나이가 건져 주었다

무심코 손이 하는 일
수심을 모르는 깊은 바다에
밀어 넣는 일 이었다





*슬퍼 할 자신이 생겼다

정해영

아침에 눈을 뜨면
밭이랑의 고추모종처럼
슬픔이 자라 있다

백 년 전에 뿌린 씨앗도
자라 있다
어젯밤에 심은 낟알도
싹이 보인다

할머니는 해가 뜨면
밭고랑에 납작 붙었다
종일 엎드린 기도로
가지며 호박이며 고추를
가꾸었다

어느 날은 바람 속에서
어느 날은 햇빛 아래서
손발이 저리도록 가꾸는 일은
거두어들이게 하는 일

오래 가꾼 이 일은
할머니 농사와 같아
가꾸는 손놀림에 신귀가 붙어
반질하다

슬픔도 오래 가꾸면
거두어들이는 것이 있어

한들한들
비바람 앞에서도
가볍게 흔들리다

꼭두서니 빛으로 온 하늘을
물들인다





아침에 지다

정해영

그가 화를 내자
활짝 핀 분홍빛 나팔꽃이
오무라졌다
아침을 위해 웃어 주는 꽃
어둠과 함께 일어 난 꽃

하루를 비춰 줄 분홍빛이
사라졌다

저녁 같은 아침
분홍빛 나팔소리 멈추었다

오목하게 닫혀
햇빛을 쬐지 못한 하루

고운 것이 비틀려 있다






정해영

모란이 지고 있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자리에서

한 단 한 단 쌓아올린
허공의 꽃
던져 올린 물건이 떨어지듯

조각이 난
맑은 눈빛과 둥글고 큰 웃음

고개를 돌려도 먼 산을 보아도
들린다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하는 울음

바람이 불고 또
비가 내린다
홑겹으로 펴 줄 수 없는 겹겹
가깝고도 먼 옆이 사라진다


자꾸 가벼워지는 꽃

오후가 간당간당하다





왁자히 피어나다

정해영

가을 볕 좋아
김부각을 만든다
찹쌀 풀 바른 김을
그늘 한 점 없는
햇볕에 널어 둔다

자작자작
물기 날아가고
햇볕 스며들어
만지면 바스럭 부서지는
가을이다

축음기 바늘에 찍힌
한 음절의 노래처럼
잘못 꽂힌 자리에서 몇 년을
맴돌 때
한 줌 가루로 부서졌을
당신의 마음이 만져 진다

잘 마른 부각을
끓는 기름에 넣으면
그때
당신 마음의 무늬가
검은 가슴위에
왁자히 피어 난다





혼잣말

졍해영

경희야
조금만 더 힘을 내려무나
세탁기가 헹굼에서
탈수로 넘어 갈 때처럼
쥐어짜는 소리가 난다

너도 제 자리에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서 있구나
이제 물러설 때도 되었다

경희야
너도 할 말이 많지
모든 것을 얻었는데
세월에게 다 빼앗겼다는 듯
살았지

바다위에서 85일째 되는 날
휘파람새에게 말을 거는
노인처럼

아무도 없는데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은
혼자인 자신을 폭로 하는 일

없는 당신을 곁에 두고
내가하는 당신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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