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과 별과 고양이
곽미숙
깨어진 사기 밥 그릇
뒤뜰에 버려졌다
한때
가족의 뼈를 세우던
푸른 날들 다가고
고양이 친구삼아
날선 조각
햇살 찌르더니
오늘
둥근 사기그릇
하얀 제비꽃을 담았다
별들이 뒤뜰에 다 모였다
봄비
종일 내린 비에
산벚꽃 놀라
어깨 움츠리고
해는 서산을 넘는데
산을 오르는 할아버지
굽은 손으로 돌을 줍는다
못 다한 소망
하늘을 향하고
땀으로 얼룩진 산등선
꽃으로 지고 또 피고
진달래꽃물 처럼
붉게 물든 돌탑
오가는 사람들
소망까지 포개지니
금방이라도 하늘 뚫겠다
내리는 봄비
온통 분홍빛이다.
길 위에서
저녁 해가 서산에 걸려
맥없이 풀리는데
아픈 몸을 끌고 산을 오른다
까마귀 소리 어지러운 좁은 길
어스름이 내려 온몸을 감싸고
아무리 빨리 걸어도
바위처럼 제자리다
나무가 거꾸로 박히고
땅이 움푹 파인다
보다 못한 남은 생이
등을 두드린다
그만 내려 가라고
내려 놓으라고
휘청거리며 지나가는
길 위에 밟히는 낙엽
살아온 지난 날처럼
바스락 거린다
미명
불러도 대답없던 시가
오늘 새벽 시집을 읽는데
혀끝에서 맴돈다
갑작스런 일이라
머뭇거리다
반길 사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준비 못한 만남이 아쉽지만
시가 머물기엔
너무 얕은 마음 바닥
잠시 다녀간 시의 여운에
아린 마음안고
창문을 여니
밤새 달려온
바람이 살며시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