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2)
불빛 따라 병실로 날아든 장수풍뎅이
병상 위 늙은 사내 곁에 나동그라졌다
애절하게 손발 비비지만
뒤집지를 못하고
섶다리 건너 고향집 그리워
왕눈 부릅떠도 일어나지 못한다
만장 앞세운 그가 폐교 앞을 지나자
장수풍뎅이는 당산나무 등걸 속으로 사라졌다
태풍
그는 힘차게 올라왔다, 점령군처럼
태평양에서 부릅뜬 눈 키워가며
앙다물고 버티고 선 나무들 뿌리째 뽑히자
고사목은 알아서 허리를 굽혀 삭정이를 털어내고
생솔가지도 벌벌 떨었다
휘청거릴 줄 모르는 비목
흔들릴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엎드려 빌어도
깨지고 터진 산
밤새 울었다
계곡을 세차게 구르던 바위도 함께
그가 홀연히 북동해로 떠나자
하늘에는 반짝 개밥바라기 눈을 뜨고
밭두렁에선 구절초 뽀얗게 빛났다
해맞이
겨울 새벽 바다로 달려갔다
웅성거리는 발자국 따라
뒤집히고
부서진 바다엔
몰려든 염원들 합장하기 바쁘다
시꺼먼 바위
허연 파도, 그들의
싸움 언제 끝날 줄 몰라
해는 혀를 깨물고 주춤거린다
간밤 차가운 별을 지키던 갈매기
벼랑 끝 소나무 위를 날아오르자
바다는 윤슬로 반짝인다
핏빛 갈등들 몰래 숨긴 채
숨을 가누고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탑 하나 쌓아놓고 돌아왔다
뚝배기춤
어이 어이,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영가 앞에 고개 숙인 조문객들 따르는데
누런 지폐 흔들고 선 사내
눈빛만 살았다
돈 돈 돈하다 아내를 먼 길 앞세워놓고
보일 듯 말듯 가늘게 들썩이는 어깨춤
또 각설이 타령인가
하지만 지금은 둔탁해진 몸, 뚝배기춤 되었다
시든 꽃으로라도 만개하고 싶은 저 욕망
자꾸만 피워 올려도
국밥 한 그릇 내놓을 줄 모르는
사내의 어깨너머로 바람이 지나갔다
새 무덤 사이로 파삭거리며 구르는 낙엽
천년 살까
만년 살까
깍깍거리던 까마귀 산으로 날아올랐다
말의 하루
아침 햇살로 고이 태어나
대문을 나서다 부딪쳐
터지고
째져서
살갗마저 벗겨진 피투성이로 나뒹굴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내달리다 넘어져
깨지고
멍들어
만신창이로 주저앉았다
다시 깨어나고 싶어,
손을 흔들어도
아수라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말의 그림자들
이내 자욱한 길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