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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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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0 22:48

35집 원고 -김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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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도주. 2


죽은 시간을 퍼내는
공복의 새벽

피에 끓는 포도주를 마시면
서늘하게 가라앉는
내 뼈들이
선명하게 너를 소리쳤다

흐린 창에 끼어 있는
너의 눈동자
내 심장을 삼켜버린 너의
붉은 혀

어지러운 기억이 몸피에
칼금으로 그어져 있다

끝없는 허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진자줏빛 눈알들이
비명처럼
짐승의 피를 쏘아 올린다


.2 민들레


여고동창 집 귀퉁이에
허름한 주막집이 있었다

뻐드렁니에 키 작은 이십대 주모는
얼굴은 모과 같았지만
음식솜씨와 노래는 빼어났다

비오는 날 실연한 동창들 서넛 모여
안주 하나에 막걸리 몇 통 시켜놓고
부서져라 호마이카 상을 두드리면

섬마을선생과 동백아가씨가 노래 속에서
걸어 나와 수많은 사연을 풀어
피멍 든 우리 가슴을 달래주었다

친구 집이 팔리고
그녀도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났다

가끔 살다
슬픔이 잉걸불처럼 이글거릴 때면
불콰한 막걸리 몇 잔에
이미자 노래로 하염없이 꽃불 놓던
민들레 같던 그녀가 그립다


.3 가제손수건


외할머니가 주머니에서
끄집어 내 펼치던 가제손수건엔
잔칫집 낯선 과자들이 소복이 담겨 있었지

차마 혼자 드실 수 없어 고이 싸온
알록달록한 과자들
새 새끼들 같은 손자손녀 입에
쏘옥 넣어 주셨지
외할머니 핸드백은 가제손수건
돈도 잎담배도 다 손수건에 담았지

밥 먹기도 어려웠던 그 시절
자식 넷 달린 과부가
맨살로 걸어온 가시밭 길
허기의 강을 건너면
허기의 산이 가로막아
죽음의 문턱까지 숨이 차던

과자라곤 맛도 못 봤을 외할머니
오십도 안 돼 몽땅 빠져버린 치아
여든여덟 돌아가실 때까지
앞니 하나로 버티셨지

조금만 여문 걸 씹어도
피가 나는 잇몸
가제손수건은 늘 빨갛게 울었지


4 . 단풍


저기 나뭇가지에 수많은
심장이 걸려있네
뜨거워 만지지도 못하겠고
만지면 금방 터져버려
사방에 피 칠갑 할 것 같네

아직도 쿵쾅 뛰고 있는지
아른아른 실핏줄이 다 보이네

악덕 교주가
신에게 바치려 막 끄집어 낸
소년의 심장일까
실연으로 터져버린
해의 심장일까

두근두근 뜨끈뜨끈
온 산이 타고 있네


5 우포늪



어디서 왔을까 저 늙은 여자는.
늘어진 뱃가죽 출렁이며
해마다 새 생명들 키우고 있네

겨울엔 얼음 빗장 걸고 잠들어 있다가
봄 되면 온갖 잡 사내들 끌어안고 뒹굴어
세상의 씨란 씨 다 품어
이름도 성도 모르는
꽃과 새들 키워내고 있네

인간세상과 다를 바 없는
저 사바의 늪에도
죽음까지 몰고 가는 지독한 사랑이 있어

커다란 방패를 찢고
솟구쳐 올라
제 살의 은밀한 전율을 탐하는
가시연꽃

진저리치는 뜨거운 입술이
저기 있네


6 지포라이트


첩첩 뼛속을 깎아오던 추위에
해가 얼비치듯
자신만의 불꽃으로
식어가던 내 몸을 덥혀주던
너의 불길은
외길로 꿈꾸던 빛의 타래

매캐한 석유냄새가 혈흔처럼 배어 있던
너의 한숨 속에는
나를 향한 뜨거운 눈물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더 밝은 곳을 향해 날았고
돌이킬 수 없는 배리의 등뼈로
네 심장의 뚜껑을 닫았다

비릿하게 살이 타오르던
월악산 골짜기
화강암 마이애불 아래
너는
기억의 촛농으로 굳어 있다


7 . 왠지 님이 봉숭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양의 실타래가
현란하게
팔월을 날고 있을 때

그늘인 듯 잎 속에 숨어
정오의 귀퉁이를 지나가고 있는
다소곳한 눈빛

그림자 발 아래 던져두고
터져버릴 씨 주머니에
서툰 언어를 다져넣은

주홍빛으로 물드는
님의 황혼

내 몸도
님의 빛깔로 물들었습니다


8 자작나무 숲



거대한 뼈가 하늘을 뚫을 듯
서 있는 자작나무 숲길을 간다

빛과 어둠이 서로에게 스미어
높이가 구별되지 않는 산기슭

자작나무는 환영 같다
하늘로 가는 길 같다

둔탁하게 쌓이는 설화 속에서
햇빛을 껴안은 눈들이
곡옥으로 매달려 작은 바람에도
차르랑차르랑 금관악기 소리를 낸다

눈을 밟는 발자국
자작자작
하늘이 도화지처럼 구겨진다

나무들이 스스로
허물을 벗는 적막한 골짜기

검은 돌들이 군데군데
흉터처럼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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