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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집 원고 - 전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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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끓어 넘치는데


한 바가지 간장을
쏟은 바닥이다
애간장도 녹으면
저런 빛깔일까
간장이 아니라
울컥
엎지른 가슴 같아
먹먹한 마음

매미가 운다
뜨겁게 운다
주저앉아 매미 소리로
함께 울어 버리고 싶은 아침
맴맴맴맴
마음을 맴이라 했던
할머니가 다가와
등을 어루만진다

울음인지 노래인지
간장인지 애간장인지
알 수 없는
바닥을 닦는다
검은 가슴을 닦는다



무기가 되어

캄캄한 밤
모퉁이 돌아서는데
끈적한 것이 얼굴을 감싼다
거미집이다
나비나 잠자리였다면
저 가벼운 집에 더 가법게
걸렸을텐데
날으는 듯 멈추었을텐데
거미줄에 하얗게 감겨
얼마나 눈부신 염殮 이였을까
남의 집 한 채를 없앤 얼굴이
미안하고 미안한 밤
온 몸이 무기가 되어
툭 털거나 훅 불어버렸던 것이
어둠 속에 스며 있다
가책이 거미줄처럼 달라붙는다
결코 잡힌 적 없는
작고 가벼운 것에 잡혀 가는 길
마음이 자꾸 허방을 딛는다




무쇠 솥


무쇠 솥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진열대엔 예쁘고 편리한 솥들이 즐비했지만 구석으로 밀려나 우직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덥석 끌어안고 말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설움을 끓이고 고통을 뜸들이며 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고 일러주던 솥 쉽게 뜨거워지지 않았지만 쉬 식지도 않아 언 몸과 마음을 오래 녹여 주면서 기다림과 한결같음의 의미를 일러 주었지요 무쇠 솥에 밥을 안치니 자작자작 뜸 들이는 소리가 아침을 깨웁니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흰 밥을 수북이 담아 밥상에 올려놓고 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검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제 속의 뜨거움을 미련스럽도록 견디는 무쇠 솥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일상의 중심을 꽉 눌러 줍니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 지하를 달렸다
그녀의 수도복처럼 캄캄한 지하
캄캄해서 더 환한 얼굴이 지하철 창에 비쳤다
흔들림 때문이었을까
여러 겹 비치는 모습이 여러 겹 마음 걑았다
지하 철 역마다 켜진 불빛이
끝내 닿아야 할 곳
닿아서 또 떠나야 할 성소처럼 보였다
수도자 옆에 앉아 지하를 달리며
두 손을 고요에 포개 놓았다
서로 옷깃이 닿을 땐 서늘함이 건너왔다
나란히 앉은 옆은 물들기 좋은 자리
등이 꼿꼿해지고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마음이
더듬더듬 새어 나왔다



심해의 얼굴


푸른 눈동자
흰 이빨
반짝이는 의상

모셔 온 듯
미끈한 자태가
불빛 아래 빛난다

한 점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한 점 바늘에
입이 꿰인 물고기

배를 가르고
뱃바닥을 긁어내도
눈 한번 깜박하지 않는다

심해의 얼굴이 저럴까
눈과 입이 있는데
표정이 없다

이 무심 앞에
오금이 저린다
벌떡 일어나 한 소식
전할 것 같아
칼을 쥔 손끝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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