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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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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집 원고 ㅡ 김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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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왕산


느재미 골짜기에
밤이 군화발로 투벅투벅 걸어왔다

적막이 주검처럼 매달린
귀면석 아래
잿빛 새처럼 날아오르는 물안개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눈을 번들거리며
아랍 칼처럼 휘어진 달이
산 옆구리를 푹 찔렀다

충혈된 산의 눈자위 속,
거친 나무들의 숨소리
거대한 바위들이 마왕처럼 일어서고

뒤틀린 자궁 용추의 沼,
속 깊은 곳을
팔매질 하듯 휘돌아 쳐
뒹구는 흰 물결

장군봉 목을 안고
대전사 다리 아래 길게 누웠다


2. 포도주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남편을 보내고
나는 남편이 아끼던
포도주 독을 껴안았다
포도주는 잘 도는 피처럼 붉었다

해가 없는 골방에서
밥 대신 포도주를 마셨다
뼈마디마디 돌아다니던
칼 같은 고통이
수면 속으로 잦아들고
독 속으로 무겁게 가라 앉던
검은 달

겨울바람에 빈 독이 우는 밤
뼈로 선 포도나무 한 그루

깨진 창틈으로
하늘이 만장처럼 붉었다


3 고독


아파트는 숯막처럼 깜깜했다
호박벌레처럼
어둠을 헤집고 들어가 누우면
물커덩 허공이 몸을 지웠다

잠속에서 누가 폭포처럼 울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은 바다 같아서
파도가 벽을 쳤다

창 밖 상주 같은 이팝나무
불면이 묻은 눈에
새벽 일출이 붉게 일렁이고 있었다



4. 수성못


둑에
포장마차 팔불출이 있었다

비오는 날
팔불출
소주 몇 잔에 취할 때
젓가락 장단 맞춰
억세게 비닐지붕을 두드리던
빗줄기

꺽꺽 눈물이 노래를 했다

비탈 아래
흰장미
주객들의 오줌 줄기에
누렇게 웃었다


5.봄 편지


오래토록 기다리던 봄비가
가야금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나무 그늘에 숨어 서성이던
그대 꿈 속,
모란꽃들이 빗소리에
왈칵 피었습니다

꽃향기 둥둥 떠가는 물안개
봄비 되어 실없이 달려가서
숨죽여 불러보는
눈시울 붉은 그 이름

화인으로 남은 그대에게
길 없는 편지를 쓰고
잠속에만 열리는
푸른 수로를 만들었습니다


6.월식


모교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
날카롭게 뻗친 가시 사이로
탱자가 노란 달처럼 숨어 있었다

그에게 탱자를 주고 싶었다

탱자 울타리는 시퍼런 경계로 탱탱했다
그물처럼 얽힌 어둠 속
탱자를 따는 손이 피로 얼룩졌다

그에게서 탱자 향기가 났다
구름 속에 숨었던 달이
금가락지처럼 둥글어지고 있었다



7. 노안


언젠가부터 눈 안에 실뱀 한 마리가 산다

평소에는 없다가도
돋보기를 끼고 책을 볼라치면
눈꼬리에서 슬쩍
대가리를 곧추 세운다

안과에 가니
잘못 들어왔다가 주저앉은 먼지란다

문득 내 망막에 떨구고 간
그의 머리카락 일까

지나간 기억들이 뜯어진 실밥처럼
타져 나와
낡아가는 몸속에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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