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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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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21 16:24

전영숙 34집 원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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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와 뱀



활짝 핀 코스모스 발목을
뱀이 휘감고 있었다

더운 햇볕 아래 서로를
마시고 있는 듯

코스모스 허리가 뱀처럼 휘고
뱀의 비늘이 꽃잎처럼 반짝 거렸다

허공을 가볍게 들어 올리는
코스모스와 뱀의 뒤섞임에

슬며시 발을 밀어 넣는 바람
겹쳐지는 나무 그림자

-내가 바로 너야 네가 바로 나야

스미고 흘러들어 구별 없는 세계가
한 순간 활짝 열렸다 닫혔다

거짓말 같고 농담 같은
풍경의 바닥





정월


할머니가
말린 달을 꺼냈다
깨끗하게 씻어 물에 불렸다

쪼글쪼글한 주름이
더디게 펴지고
희미하게 둥근 모양이
살아났다

해지고 저녁이 되자
양푼이 가득 달이
넘실거렸다

할머니가 달을 건져
어둠 속에
내다 걸었다
오래된 빛이 길게
흘러 나왔다

할머니 손은 약손
할머니 손은 약손
부드러운 보름 달빛이
세상의 아픈 배를 어루만졌다





봄밤


풀쩍 뛰어 올라
꽃가지를 꺾는
소녀들

꽃 도둑이야
외치며 뒤따르는
소년들

키득 키득
바람이 달려오고
키득 키득
별이 따라간다

수천 송이 어둠이
벌어져
환한 밤

갓 구운 빵 속 같은
세상에
꽃들은 꽃인 줄도
모르고

키득 키득
서로
키득 키득





또, 한번



법당 문이 환하게
열려 있었다
가득 찬 햇볕이 방안을
살랑 살랑 흔들었다

방석위에 정좌한
목탁에서
민들레가 나오고
제비꽃이 나오고
바람꽃 별꽃들이
다투어 나왔다

부처님도 실 눈뜨게 하는
눈부신 것들
저마다의 경을 펼쳐
흔들었다

저 작은 무리들이
또 한 번
천년의 절 마당을
번쩍 들었다 놓았다




귀고리


귀를 뚫었다

장미와 나비
물고기 모양이
번갈아 걸렸다

귓불에 걸려
달랑거리는
세계는

작은 구멍을
통과한
세계


속이 텅 빈
구멍의 힘은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힘

낙타도
황소바람도
당신도
오백 년 전
할머니도
걸려 있다

해와 달과 별처럼
우주의 귓불에





겨울 강



고라니 한 마리
언 강 위를 간다

바람이 등을 밀어도
건너편 산이 힘껏 당겨도
아직 강 가운데

날렵하고 긴
네 개의 다리도
소용없는 바닥

무너지고 솟는
걸음이
벼랑이고 절벽인 길에

막막한 짐승
젖은 눈동자를 굴리며
하염없이 떨고 있다

멀리 별이 글썽거리고
얼음 밑을 흐르는 강물
자책하듯 시퍼렇다





해빙


언 저수지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다

어떤 기운이 들쑤신
흔적
살이 흘러내리고
뼈가 녹아
물결처럼 펴지는 얼음

저수지 둘레가 부풀고
일렁이는 파장이
가장자리까지 번진다

알을 쏟아 놓은
어미 연어처럼
핼쓱해진 겨울

저수지 바닥 깊이
내려가
배를 뒤집고 눕는다






























소망나무



해지고 어둠이 내린다
붐비던 병원로비도 조용하다
한 구석

비닐 이파리 무성한
인조 나무가
불빛에 반짝거린다

잎잎이 간절한 소망도
반짝 거린다

한 잎의 무게로 코팅 된
고통과 아픔들
멀리서 보면 트리 장식 같다

사막도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했지

수많은 사람들 눈물로
자라는 나무
그늘이 깊어
어둠도 가만히 비켜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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