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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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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수평선


바다를 지나며 어머니는 ‘그 날의 바다색은 그 날의 하늘빛 이라고 하신다’ 하늘과 바다는 둘로 나뉘어 있지만 하나 라고 하신다 형제가 대 여섯이나 되어도 여러 동강낸 무처럼 처음엔 한 몸이라 하신다 수평선은 답답하고 막막할 때 바다로 나가 멀리서 바라보는 선, 오래 마주하면 어딘가가 꿈틀거려 둘이 하나가 되고 불목 진 여럿이 한 덩이가 되는, 끝없는 善이 線을 지우는 자비의 긴 금이다


어느 날 가늘고 질긴 어머니의 수평선이 끊어졌다 경계를 알려 주시던 줄이 없어졌다


무심히 일러 주시던 당신의 말씀이 수평선 이었다







뉴스와 아이스크림



기다렸다가 보는
저녁 9시 뉴스
냉동실에서 갓 꺼낸
아이스크림 같은
서리 낀

‘벨기에 IS 테러 참사’
뉴스는
한입 베어 물면
간담이 얼얼하다

‘이름 모르는 이에게
장기를 떼어주고
얇은 희망의 이불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저체온의 저녁

시간이 지날수록
뉴스가 녹는다
저녁 9시가
질퍽하게 흘러내린다






사치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번호가 안 보이는 엄마에게는 사전 속 깨알 같은 글씨를 읽고 공부 하는 딸의 젊음이 호사스러워 보인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없는 가마나 승용차도 상위 등급에 속 한다 대중교통 같은 외연을 지닌 生活은 덜커덩거리고 불편하고 돌아 돌아서 간다 큰 것은 작은 것을 품을 수 있지만 작은 것은 큰 것을 삼키지 못해 쿨럭쿨럭 불화가 인다 소지품을 다 넣을 수 없는 작은 가방은 사랑스럽다 작은 것은 은근히 사치스럽다

심지어 옛 조상님 한 집에 살았다던, 큰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이고도 모자랐던 소첩, 작은 어머니도 그 시대 아버지들의 처연한 사치품이다







역사



햇빛에 바래어진
무말랭이처럼

그해 그날
그 고랑에서 뽑아낸
무우 같은 것을
단면으로 베어
말린 것이다

언제인가 그 맛
되씹어 볼 수 있는 쫄깃하고
쪼글쪼글한 활자체로
책속으로 들어가
수백 년 전 일들이
맛으로 남은

알맹이









색깔은 언어이다



비명처럼 싹뚝,
뿌리 잘린 줄기가
화병 속으로 들어섰을 때
잔잔한 물이
오래 품었다

잘려나간 뿌리 대신
기웃기웃 말들이
터져 나왔다

꽃은 흩어지고
저마다의
피워내지 못한
언어의 봉오리들이
수근거린다

홀로 국경을 넘는
시들은 꽃잎에서도
주기도문 같은
말들이 돋아난다








아코디언



바람에 꽃 지는 것이
세월이라면
무심히 너를 따라
갈 수는 없다

너는 당기고
나는 민다

당기고
미는 사이

어느 새 눈 밑에
가혹한 주름
사이사이
흐르는 음률

지그시 누르면
흐르는 눈물 따라
이절도 되고
삼절도 되는

얼굴에는
심금을 울리는 오래된
악기가 있다









카레라이스


누렇고 붉은 흙탕물 같은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갠지스강을 생각한다

바라나시의 골목처럼
깊고 좁고
어둡고 냄새가 나는

소원을 비는 꽃과
시체의 화장재가
함께 흐르는 곳

죄를 씻은 물
더럽고 성스러운 강

카레는 밝고 어두운 맛을
거느리고 행진한다
먹으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기쁨속의 그늘

카레라는 운하를 건너
멀리 갠지스강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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