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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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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음식도 자학이다

세상이 시끄러우니 매운 것이 더 당긴다

청양고추 빨갛게 풀고
꿈틀거리는 산 낙지 통째로 넣은
펄펄 끓는 짬뽕을 먹을 때
온몸을 적시는 땀과 와락 쏟아지는 눈물은

지독한 실연 끝에 상처를 쥐어뜯듯이 낄낄거리며
죽어라 마셔대는 쓴 소주
뒷날, 뼈골이 쑤시고 다리가 풀려
땅바닥을 기다가도
해장으로 쓰린 속을 헹구는
얼음 맥주는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헐어터진 입 속에
뇌가 거꾸로 서는 부산 떡볶이,
한 입 씹으면
미친 듯 혓바닥 위를 달리는 불자동차
존재에 사이렌을 켜듯
가슴이 펄떡 뛰는

2)모란

진자줏빛 모본단 저고리 벗어놓고
그녀는 갔네
몸이 물컹해지도록 달큰한 향기
아직도 겨드랑이에 은은한데
왔다간 흔적만 바빠서
대궁이만 홀로 젖었네

황금 빗 세워 윤기 나는 머리
활활 빗고
열 두 겹치마 훌훌 풀어 황홀하게
세상을 휘감더니

봄비 내려 거리를 떠돌다
돌아온 저녁
그녀는 갔네, 가버렸네
자줏빛 저고리 판소리처럼
가슴 저미게 흩어 놓고

3)못

차가운 그의 심장에다 못을 박았다

우주가 수 천 조각으로 찢어졌다
은하계가 직립으로 긴장하면서
우수수 별들이
블랙홀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빛에 비친
그의 등에
황혼이 붉은 강처럼 흘러갔다

꽝꽝 벽에
아무리 두들겨도
꿈쩍도 않는
눈,

그가 박아 놓은
못이다


4)거리의 수행자

많은 사람들 지나가는 거리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가로수
그가 서 있다
골목마다 넘쳐나는 사건들과
귀를 찢는 소음들
흡반처럼 살갗을 파고드는 매연으로
해마다 관절이 툭툭 불거졌다

작은 바람에도 끝없이
욕망과 번뇌를 펄럭이는
나뭇잎들

좀체 가시지 않는 집착의 갈키를
끊어 버리려
집요하게 화두를 틀어쥐면
까맣게 내려앉던 하늘

어느 겨울 아침
밤샌 눈보라에 묵은 화두마저 떨쳐버리고
하얀 무명으로 몸 나투신
플라타너스

5)안지랑골

오만 표정의 바위가 불퉁거리는 안지랑골
무속인들은 대낮에 떨어진
태양의 비늘을 주어 옷깃에 감춰두었다가
깊은 밤 산신께 치성을 드린다
외롭고 아픈 영혼을 불러 위무 하고
엎어진 생 다시 일어나게 해달라고
수 십 개 촛불을 밝혀놓고
징으로 질펀하게 어둠을 패댄다

뿌리 잘린 나무 새뿌리 돋게 하시고
신열로 들뜬 몸 명쾌하게 하시고
주머니마다 금화로 가득 차게 하시고
바위 밑으로 흐르는 물
눌리어 아픈 신음소리를 내는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징소리
업이 까무룩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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