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리다
내부의 일이다
손닿을 수 없는
속사정이다
딴에는
난리도 아니었는지
견디어, 견디다 못해
약속을 흘리고
지갑을 흘리고
실성한 웃음을 흘리고
그 중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오는 길은
눈꺼풀이 심연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다
부목
서로 알아 온 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당신의 그릇과 깊이는
끝내 몰라주는 것이
믿어 주는 일
더 사랑 하는 일인 것 같아
철지나 당신이
작은 꽃망울로 솟을 때
화들짝 창문을 열어
바람과 햇빛을
들여보내고
꽃모양과 빛깔은
마음으로만 그렸습니다
연유도 없이
때 아닌 눈발이 날립니다
아직도
당신을 몰라주는
튼튼한 기다림 하나가
부목처럼 붙어 있습니다
늙은 눈
화살은 발자국이 없다 소리가 없다 목표물 근처에 떨어진 수많은 화살들 침묵하고 있다 둘러보면 명중한 삶도 흔하지 않다 매일 허리를 굽혀 몸으로 활을 만들어 꿈을 향해 조준하는 동안 생의 탄력은 유지되었다 발사 직전의, 시위를 걸어 버텨내던 순박한 고통들이 저 과녁의 늙은 눈 속에 고스란히 박혀있다 시위를 당기면 인연이 없는 것은 사정없이 흩어져 빗나갔다 이제 남은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일각일각 다가오는 산보다 무거운 과제는 내가 나를 명중하는 일이다
너무도 잘 아는 이 가까운 거리에서
실상 조준이 불가능하다
히말라야시다
새순 날 때
너를 안다고 생각 했네
가을이 되어
너는 물들지 않는
바늘잎 이라는 걸 알았네
처음 너를 만나
너는
떡갈나무 넓은 잎에
도토리를 키우며
이웃과 함께 불그스레
물들어가는 나무라고
몰라보게
시간이 흘렀을 때
도리 없이 어깃돌 위에 서서
처음부터
아는 것은 없었다네
그저 어떤 시작 속에는
탄알 같은 놀라움이
장전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네
꽃은 새를 꿈꾼다
아카시아 꽃향기
너는 먼 새
산 아래
꽃대가 흔들릴 때
수천마리가
보이지 않는 날개를 쳐서
이곳까지 온다
자정이 넘은 책상머리를
작게 혹은 크게
원을 그리며
깃털을 날린다
오 너는
들리지 않는 울음 울며
멀리서 날아온 새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때까지
그리는 것이다
그리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