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스카라와 하이힐
거울 앞에서 주름진 얼굴에
애써 실눈을 치켜 올리며
자존심을 올린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고
하이힐을 신은 것처럼
굽은 허리가 펴지는 것 같은
일흔의
마스카라
2, 가방
가족들과 남해 바다로 여행을 갔을 때 문득 눈에 띄였다
작은 소자무 밑에
누워 있는 예쁜 가방
횡재한 듯
가지고 와서 한 달쯤 썼을까
그 가방 들고 다니다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도둑이 물건만 훔치고 버리고 간 가방일까
연인한테 버림받고
바다에 뛰어든 여인이 두고 간 가방일까
공연히 다친 것이
그 가방 탓인 것 같아
그 가방
거리로 던져 버렸다
3, 미치다
대구 신천의 젖줄이 흘러내리는
파동에 이르면
먼 역사의 뒤안길 걸어온
늙은 옹기들 즐비하다
배 둘레가 몇 아름이나 되는 가지가지
형상의 큰 독들
새 주둥이처럼 입이 작고
학처럼 목이 긴 독특한 얼굴의 독들이
왁자지껄 하는 얘기 즐겁다
아메리칸 드림도 출세의 꿈도
독 속에 묻어 버리고
오로지 독에 미쳐버린 남자는
일류대를 나온 인텔리다
독 공원을 꿈꾸며
독의 그윽한 숨결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남자의 걸음은
정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