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익은 것은 붉다
신 침 가득 물고선 석류와
허공에 한 점 까치밥과
새떼가 두고 간 저문 하늘이
붉다
다 익은 것은 붉다
저리 후끈 달아오르는 마지막이 아니라면
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는 건 늘 급체라 오늘도 나는
등 두드려 손가락 끝의 혈을 틔운다
혈이 탁! 트이자
망개나무에 한 방울 피가 솟는다
속 깊어라
오래토록 삭혀온 저 시간의 빛깔
지평선 끝까지
다 익어 붉어지는 동안
저문 하늘의 침묵을 베껴
타오르는 문장을 쓴다
금가는 소리
겨울 저수지가 얼어 있다
저수지는 여러 번 녹았다 얼어 우툴두툴 하다
오후 들어 내린 눈이 하얗게 저수지의 몸을 덮는다
흰 붕대를 덮어 놓은 듯 하다
얼음 박힌 발끝이 가렵다
등창처럼 열린 숨구멍으로 물고기의 숨 가쁜 입질
저수지 둘레가 쩡 쩡 금가는 소리를 낸다
보랏빛 근심
새끼 제비가 바닥에 떨어졌다
제비꽃들이 일제히 뒤꿈치를 들고
하늘을 향해 두리번 거렸다
날아가는 새떼에게 신호라도 보내는 듯
가는 몸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태어난 몸이 다르지만
저 둘은 이름을 나눠 가진 사이
보랏빛 근심이 온 마당 가득 번졌다
돌배나무
배꽃 떨어져
적막한 뒤란이 화사 합니다
묵은 장독대를 옮기니 오래 눌려 그늘진
자리에도 골고루 꽃잎이 덮힙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심었다는 돌배나무
큰 자태가 선비 같습니다
배꽃 둘레를 윙 윙 돌고 있는 벌들
두레 밥상에 둘러앉던 어린 우리들 같습니다
대대로 가난한 가계 보에
과실수 한 그루로 추운 봄이 풍성합니다
별
마루 끝에 앉아서 쳐다보았다
어머니 손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못난이 송편들
꾹 쥐었다 펴면 송편 하나
꾹 쥐었다 펴면 송편 둘
어둠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솜씨 부리지 않은 솜씨
어머니 손끝에서 빚어지는 것은 모두 별
크고 투박하고 오래된 빛
오늘 밤 어머니의 하늘 바구니는
못나서 예쁜 송편별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