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기형적으로 자라버린 새끼 말, 생김과 덩치가 똑같다 어미와 구별이 어려워 며칠 밥을 굶기고 먹이를 내밀 때 먼저 입을 갖다 대는 놈이 새끼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빈 행간들이 지평선 위를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 것을 굽어 볼 수 없는 먼 눈, 목젖이 타 들어가는 독초를 씹다가도 흘리거나 뱉지 못한다 새끼가 다친다
평생 독한 것만 차지하던 어미가 아프다
돌아갔습니다
헝겊인형은 그 아이의 동반자였습니다 태어나자 조그만 손안에 들어오는 단 하나의 자기편 부드러운 털실 머리 여자인형 세상의 촉수가 너무 밝아 못 견디게 울어 대던 긴 울음의 끝에 희미하게 그녀가 있었다 눈을 감으면 엄마가 안 보일까 두려워 잠 못 들어 할 때도 가만히 손끝으로 다가와 속잎처럼 잡아주던 더 작은 손
문득 어느 바람 부는 날 가슴에 심어놓은 아이와의 약속도 깊은 곳에 묻어두고 포근한 털실 머리 사방으로 흩어놓고 레이스 달린 여자도 벗어놓고
그녀의 전 생인 조각 천으로 돌아갔습니다
여행자
벙실거리는 목련 앞에서
‘엄마 더 웃어봐’
허 허 허 허
어둑하고 주름진
소리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지나온 길은
가지처럼 벋어 있고
드문드문 꽃이 달려있다
카메라가 쉴 새 없이
봄볕을 기록 한다
지니고 갈
따뜻한 그림 같은
봄날을 찍는
더 추운지방으로 떠나는
엄마
그리움
무엇이 그려져 있다
가슴 안쪽에
아무도 볼 수 없는
겹겹의 갈피 속에
숨겨 논 그림
그린 이만 알아
눈물의 한 끝이
가슴 에이면
비로소 드러나는
마음에 그린
오래된 그림
포설
꽃잎 하나 떨어져도
봄이 깎인다*
대패 날에 밀려나는
나무오리 목련꽃잎
떨어져 발밑이
자욱하다
여위어 가는 봄
쓰-윽 쓰-윽
봄을 깎는 대패질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