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뱅이* 간다>
202번 버스타고
가르뱅이 간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다리 아래가 종점인 곳
어릴 때 고향 떠나
사글세 전세 떠돌다
겨우 터 잡은 임대 아파트,
늘 객지 같았다
뱅뱅 돌아 지친 몸 하나 둘 곳 없다는 건
다섯 살 무렵,
들에서 일하는 엄마 기다리다 지쳐
혼자 집에 가다 길 잃어버린 날 심정 같은 것
계속 앞으로만 가다
영 다른 길로 갔던 그날
가까스로 만난
고향 같았던 엄마 품속
길 헤맬 때 잡을 줄 하나 갖고 싶어서
내 말 다 들어줄 귀 하나 갖고 싶어서
나는 가르뱅이 간다
*삼백여년 전, 최씨 선비가 개척했다는 대구 와룡산 기슭 상리 2동 마을. 골목이 많고 귀처럼 생겼다고 괘이방掛耳方이라 했다. 점차 발음하기 쉽게 괘리뱅이 과루뱅이 가르뱅이가 되었다고 한다.
<나비>
나비다!
귤 알맹이 두 개 나란히 펴며 아들 하는 말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래 부르는 입속으로
귤 날아간다
이리저리 팔랑거리는
가볍고 빠른 저 몸놀림
어느 새,
나비잠 들었다
<무태*>
어릴 적 같은 동네 살았던 선이
여덟 살 터울 삼대독자 동생 있었다
맞벌이 간 부모 대신
업고 안고 키웠는데
그 동생, 여섯 살 되던 여름
무태 물놀이 갔다 그만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 후, 말을 잃은 그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더니
술집 여자 됐다는 소문만 들려왔다
귀한 아이 물에 빠진
무태가 내 귀엔 자꾸 태 없는 아이로 들려
다시 가지 못했다
아들 태우고
서툰 운전에 길 헤매다 가게 된 그 곳
접촉 사고가 났다
자식 키우면
실바람 한 올에도 가슴 쓸어내린다더니
그 뒤, 다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무태조야동(無怠助也洞)은 대구광역시 북구의 행정동이다. 법정동 동변동, 서변동, 연경동, 조야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이 깊고 많아 예전에는 물에 떠내려 간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고 함.
<불금>
불타는 금요일 보내
금요일마다
쏟아지는 문자 메시지
뜨거웠던 날 있었는지
기억에서 오래 된 말
퇴근길,
갑자기 코피가 터졌다
붉다
너는 불금
나는 붉음
어쨌든 붉다
동성로 거리 젊음 불금
서쪽 하늘 놀 붉음
<수요일 오후 3시 30분>
여자가 가장 늙어 보이는 시간*
일주일의 딱 중간
수요일 오후 3시 30분
인생 중반 접어든 중년
허리가 휜다
학창시절 한가운데
중학교 담장에 핀 저 꽃
너도 참 피곤하겠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2013년 1월22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