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도 없는
그 사람을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눈바람이 몰아쳐도
그냥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이
끝없는 사막과 같아도
무한정 기다립니다
한 줄기 빛을 품고
겨울나무
나무가 옷을 벗고 있다
알몸으로 추운 겨울 산을 지킨다
두려워하지 않고 다 벗어놓고도
의연하게 묵묵히 서있다
나무가 옷을 벗는 것은
죽음을 맞는 고통이지만
자신을 숨김없이 다 들어낸다
나무는 자신의 살길을 알고 참고 견딘다.
사람도 옷을 벗어야 산다
겉치레의 옷은 다 벗고
알몸 드러내면
나무처럼 편하게 살 수 있으리라
탈을 벗고 병들고 썩은 것 도려내야
희망의 새싹 돋는다
사람들은 욕심의 옷을 벗지 않고
그냥 버티다가 칼바람 맞는다
봄의 소리
귀 세우면
가만가만 들리는 소리
마른 풀잎 속,
찔레가시덤불 속에도
봄이 속삭이는 소리
눈 녹는 바위틈에도,
산모롱이 돌아
빨래터 가는 길에도 한나절
소곤소곤
얼음 녹아
물 흐르는 소리에
개천가 버들강아지 깜작 놀라
화들짝 눈 뜬다
꽁꽁 언 땅 금가는 소리에
촉촉이 땅 젖어
흙내음, 풀냄새,
살며시 스며드는 새봄의 향기
심령에도 가만가만 들리는 소리에
삭막하던 가슴 사르르 녹아
희망의 새싹 튼다.
모과나무
나의 창가
모과나무에 온 까치 한 쌍이
유별나게 짖기에
무슨 기절할 기쁜 소식이라도 하고
나가 보았다
모과나무 위에 깜짝 놀랄 기적이......
살을 파고드는 대한 추위에도
까치가 앉은 바로 밑가지에
초록빛 생명을 단 잎 삼십여 개가
세찬 바람에도 기세당당하게 나부낀다
기막힐 좋은 일이라도 금방 일어날 듯
가슴 벅차게 파도친다.
칠십 여 고개를 넘도록 살았어도
이런 일은 처음 맞는 감격에
올 한 해의 나의 꿈이
만감(萬感)으로 교차한다
서광의 징조인 듯
마음 환하게 밝아지며
간절한 소망으로
이 한 해를 조심스럽게 기다린다.
나의 집 신발장
밤늦게 돌아오면
나의 집 신발장에는
크고 작은 신발들이
가득 있었다
내 아이 삼남매의 신발
족하, 질녀들, 남동생
친척아이의 신발까지
이젠 그 신발들
다 제자리 찾아가고
남은 신발 한 켜래가
외롭게 기다린다
비싸게 맞추어 신다가 둔 신발들
이 젠 신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못해 신발장 한 쪽에 모아둔
찌그러진 신발들이 내 얼굴이다
그 앞에 서면
나의 군상(群像)들이
회상의 날개를 편다
세월의 무상함 속에 지난세월
찌든 삶이 영상처럼 펼쳐지면서
아름다운 꽃으로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