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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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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 29집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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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화석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
여행을 떠난다
어느 가난한 신랑신부, 시계도 없이 혼례를
치렀는데 신랑은 처음 가는 처갓집이라
폼 한번 잡을 양으로 친구의 시계를 빌려갔다가
그만 처남들에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그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고, 시계의 주인을
두 번 다시 볼 수 가없었다

막장, 지하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생을
퍼 올릴 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
그때마다 지울 수 없는 친구의 얼굴
강산이 수없이 바뀌고

불나방 가루보다 더욱 미세한 검은 가루
그의 가슴 속 지층에 오롯이 쌓여
한 점 나뭇잎 문양 화석이 되어 돌아온 시계
한 생의 탁본과도 같은,



가을은 집배원처럼


한 고개 너머의 한 집에
편지요! 다가서면 늙은 여자는 청맹과니
멀리서 보낸 딸의 안부는 일일이 읽어주어야 한다
해설까지 맡은 집배원
장날은 약심부름에 북어 몇 마리까지
이렇듯 어우렁더우렁 칡넝쿨 길 헤치고
천천히 다가와 붉고 커다란 가방을 연다

또다시 어깨에 걸치고 언덕배기 헉헉 올라와
한집에 머무는 것도, 가방 속에 쪼그리고
앉은 것도 잠시
파랑 빨강 노랑 갈색 주홍빛 엽서들
색깔만큼이나 갖가지 사연을 풀고 있다

가을은 외딴집 마당가에 펼치는 멍석
긴 혀의 햇살에 붉은 고추 박의넌출 말라가고
세월의 무게 이기지 못해 내려앉은 초가지붕
몇 개 알을 품던 어미 새의 체온도
오래오래 기억하려는지, 집배원 떠난 뒤에도
둥글게 피어오르는 굴뚝연기


국밥이야기


해질녘 먹자골목을 지나는데
신호등 빨간 불이 켜지고
창밖 간판이 “거지국밥”이다
처음 보는 거지국밥
바닥 인생 거지들이 먹는 국밥일까?
고기 한 점 없는 돼지비개에
시래기, 대파, 고춧가루 듬뿍 넣고
푹푹 끓이면 시뻘건 기름띠가
노을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그런 맛이 느껴질까?

신호등에 다시 파란불이 켜지고
차가 움직이자 전봇대 뒤에 숨었던
“우” 자가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우거지국밥이었군,
늘 먹고 싶다고 생각했던

아니다, 한 생의 긴 여정에서
빨간불이 켜질 때 혹은 파란불로 바뀔 때
먹어온 국밥들 이름을 바꾼다면 어떨까
먹어도 허기가 지는 “거지국밥”
둥둥 뜨는 하현달이 아니고
이왕이면 사랑의 우거지국밥에 꽉 찬
보름달이면 더더욱 좋겠네,


누가 길을 묻거든


저, 칠성동이 어디냐고
누가 길을 물었다
칠성동 은 저리로 가시라고
가리켜 주고 돌아서는데
길 위에서 나는 내 길을 잃었다
순간,
환한 대낮이 그믐밤으로 보인다

다시 안개가 다가 와 길을 묻는다면
불시에 천둥번개가 길을 묻는다면
벼랑 끝 풀꽃 한 송이 쪽으로
가시라고 넌지시 가리켜 주리라

바람에 이리저리 뒤척이던 내게
당신이 길을 묻는 건 실수인 것,


개밥그릇


옛집,
마당가 감나무 아래 쇠줄로 목이 묶인
늙은 개 한 마리
목의 핏대와 쇠줄을 칭칭 감아 놓은 말뚝사이
서로당기는 힘 팽팽하다

앞발로 흙 담을 파다말고
먼 산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내가 아주 가끔씩 들려도 짓지도 않는다
평생 단풍놀이 한 번 가 본적 없는 옆집
순이 엄마 같이 집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아침에 먹다 남은 밥풀 몇 알
허기가지면 먹는 시늉을 하다말고
밥그릇을 물어뜯다가, 집어 차다가,
데굴데굴 뒹굴기도 하는 품이
전생의 탕아가 돌아와 여기 묶여있기라도
한 것일까,

머리를 치켜드는 산만한 생각들

개 밥그릇,
내가 예까지 온 것도 내 의지가 아니니
날 좀 내버려두라고
누가 내 흉터의 골 깊이를 알겠냐고
찌그러진 개밥그릇 푸념을
무심히 내려다보는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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