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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 29집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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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언제부턴가 그는
그 자리에 있어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가끔씩 내려와
추수 앞 둔 농사를 들쑤시는
저 멧돼지 같은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그가 있어
부둣가 횟집들은 안심하고 잠이 든다

늘 거기 있어도
청명한 날엔 눈에 띄지 않는 그
태풍경보가 내린 날은
태산처럼 미덥다

한밤중 아무도 몰래
파도에 시달린
팔다리 주무르며
어깨 들썩이고 숨죽여 울기도 하는 그

오늘은 발 씻고 앉아
갈매기를 세고 있다



그 해 가을

강둑을 걷고 있었다
가물어 흐르던 물은 멈추고
자갈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찔레 덤불이 앞을 막을때면
하모니카를 불었다

해는 떨어지고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리던 길
끝이 보이지 않던 그 길을
나는 혼자 걷고 있었다
아니, 돌아가신 엄마와 손잡고 걷고 있었다
노란 은행잎이
한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초여름, 뻐꾸기 소리 흐르는

뱁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어미 뻐꾸기 날아가 버린다

양어머니 품에서 깨어 난
뻐꾸기 새끼

격렬하게 먹이를 보채는
덩치 큰
업둥이를 기르느라
등골 휘는 어미 뱁새

누렇게 익은 보리밭 위로
비행기 한 대 지나간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파란 눈의 양부모 찾아
태평양 건너가는
뻐꾸기 새끼 같은 아기도 타고 있을까

누런 보리밭 위로
뻐꾸기 소리 흐르고 있다
나른하게
한가롭게



사파리에서

고향 떠나니
사냥하지 않아도
일용할 양식 걱정 없어졌다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다
더위로 노곤해진 몸
인공폭포 밑 물속에 담가본다

안락함 만으론 잠재울 수 없는 그리움

입 크게 벌려 포효해 보지만
눈 감으면 지척인
그곳 너무 멀다

밤이면 별빛 쏟아져 내리던
아득한 고향

베트남에서 시집 온 위엉 쑤안은
대전 오!월드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호랑이를 보고 있다



전화 한 번 해 주지

오랜 친구 전화가
몹시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

애 먼 소리 듣고 억울해서 쓸쓸한 날

기분 좋은 일로 마음 화창한 날

갈림길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생각 많은 날

전원이 꺼져있나
전화기만 들었다 놨다

내 맘 깊은 골짝까지
알고 있는 친구는
뭐 하는지

기다려지는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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