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29집 원고 > 토론해봅시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토론해봅시다

|
12-11-01 13:25

물빛29집 원고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전 체 목 록
유년시절

이끼 낀 뒤란 낮은 울타리
그 옆에 핀 망개꽃 지고 난후
저녁달 올라와 적요한 뜰을 비춘다
오랜만에 보는 生家 뜰이고 달빛이다
내 유년시절 붉은 수숫대 울음에
마음 조렸고 지금도 그 소리
공허한 바람소리로 혼을 빼앗아가
망개알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
가슴속은 아궁이불 타듯
빨간 불길 새로 지난 일들 떠올라
야심한 밤에 놀라 깨어나면
어디로 갔는지 유년시절은 사라지고
한기에 오들오들 떨며
꽃으로도 피어나질 못할
망개알 하나 내려와
툭하니 뜰 안에 떨어진다
겨울에도 자라려는지



무엇을 더하여 꽃피울까

길과 나무 검은 구름 너희들은
장대한 팔월을 이고 있다
대기의 이동 말이 없고 울창한 숲은
먼 산에까지 이어진다
간혹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애초에 암울한 시선 북쪽 허공을 따르다,
그마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면
관수재 뜰에 힘없이 선 나를 발견하곤 더욱 놀란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암울한 덫으로 포박케 하는가
젊은 날 한 여인에 대한 이 질긴 사랑인가
그리움의 실로 짠 짧은 사랑의 形骸,
이젠 노랫가락만 남았으니
깊이 못 박힌 너 애련의 줄기에다
무엇을 더하여 꽃피울까



친구

웅덩이 물에 날짐승 그림자
비치고 관수재 뜰은 고요하다
육십년 지기 친구가 찾아왔다
내자는 씨암탉을 잡아 술판이
거하게 벌어지고 신변, 세상이야기로
의기투합 어두움이 내리고
외등 위로 밤달이 걸렸다
앵두꽃 달빛 아래 더욱 곱다
아침엔 까치가 울고




분이

유리잔 속에 고인 아침햇살
날아가던 새의 눈에 반짝인다
집들은 고요 속에 잠기고
여명에서 깨어난 아이들
수수밭으로 달려간다
달과 해가 바뀌는 순간
나는 행복하다

분인 우물에서
그 작은 손으로
햇살을 집어 올려
내 집 창문에
걸어두고
간다




살구꽃

어렸을 때다
소학교 2학년 때던가
허기가 진 하교길
남의 집 토담 밑에 앉아 있었다
그 날 살구꽃 연분홍빛은 하도 고와
구름도 햇살도 빛을 잃고
나는 한 폭 유채화를 보는 것 같아
한동안 눈이 부셨다

다 늙은 지금에도
연분홍 꽃잎과 토담에 트인 하늘은
나에게로 내려온다
고풍스런 언덕 위 흰 집들과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구름의 황홀함에 취하여
또다시 혼미해진다



시인의 서재

건물 벽에 반쯤 잘린 산과 숲
서재 책상에 놓아 둔 흰 풀꽃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하늘을 비상하는 구름이 된다
힘찬 곡선을 그려내는 독수리의 날개가 된다
숲은 비와 태풍이 지나간 자리로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저들 왕성한 생명력은
여인의 유연한 나신으로 깨어난다
과녁을 향해 날아간 화살 탄력으로 꽂히고
투명한 유리알로 드러난 옥색 하늘,
아득한 허공과 무성한 숲에는
시인의 예리한 눈이 명중한다
거기 반짝이는 불꽃



저녁별

강물로 흘러가는 비애를 건저
하늘에 반짝이는 저녁별로 올린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번개를 부르고
묘지의 침울한 정적을 깨트린 분이 웃으면
작은 노새 프라테로여 너는 모게르지방의 황혼을
나는 네 고향 모게르의 포도밭을 떠올린다
여기 상암천 금호강에 이어지고
무학산이 포도밭을 내려다볼 무렵
집들 사이 훤한 들길로 나와
농가의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본다
그 때, 이상하다 저녁별 하나
가슴에 환한 꽃등을 단다

* 모게르 J R 히메네스가 태어난 고향

TAG •
  • ,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목록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62 스카보로시장에서 사온 세이지꽃 1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2-08 215
461 봄날 미소년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5-10-21 214
460 34집 원고 -고미현 침묵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7-10-27 214
459 나무에 기대어 / 전 영 숙(920회 토론작) 1 서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5-10 214
458 답변글 국에 밥말아 먹었다.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5-11-12 213
457 모두 세 편입니다.^^ 신상조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11-11 213
456 철 따라 변하는 사랑에 대한 각서 / 조르바(907회 토론작) 1 조르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10-26 213
455 답변글 ㅎㅎ 착한 여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7-06-11 212
454 외돌개 로즈윈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8-10-01 212
453 정금옥 - 꽁초외 2편 정금옥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6-10-26 212
452 34집 원고-남금희 조르바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7-10-23 212
451 호야 꽃, 꽃(시) 온소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7-04-17 211
450 정해영씨의 <할머니의 안부>를 읽고, 이오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8-08-14 211
449 물빛 36집 이오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9-10-15 211
448 거미5 박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10-12 211
447 강촌 - 토론 부탁드림니다. 김학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04-14 210
446 봉쇄 외, 한 편 신상조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7-01-20 210
445 31집 동인지 원고 전영숙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4-10-08 210
444 꽃이 바람에 물결치는 장면 1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5-23 210
443 고향 김상연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5-11-07 209
442 『메타피지컬 클럽』 신상조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7-08-07 209
441 36집 원고 / 전영숙 서강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9-10-02 209
440 이경순 물빛 28집 수정본 카라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1-11-16 208
439 33집 원고입니다 서강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6-10-18 208
438 수국의 웃음 2 하이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8-23 208
437 답변글 재미있고, 맛깔진 메나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3-12-01 207
436 품음에 대하여 / 정 정 지 1 목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3-06-27 207
435 답변글 공감 ^^* 메나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5-10-05 206
434 답변글 봄날을 다시 수정 했습니다. 미소년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05-18 206
433 31집 동인지 원고 카타르시스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4-09-24 206
432 뭉클한 것 1 하이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2-22 206
431 답변글 이제야 ㅎㅎㅎ 신상조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04-22 205
430 30집 원고 한 편 '자리공'입니다.^^꾸벅 우주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3-11-13 205
429 바람 부는 날 바늘꽃 울었습니다 4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2-21 205
428 답변글 음......, 정말 재미없군! 메나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12-26 204
» 물빛29집 원고 구름바다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2-11-01 204
426 답변글 고향 이오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5-11-12 203
425 연가 미소년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5-11-14 203
424 춤추는 손 1 해안121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2-08 203
423 물빛39집 원고 박수하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11 203
422 불빛 30집 원고 돌샘 이재영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3-10-17 202
421 원고 착한여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4-08-06 202
420 답변글 원고 이오타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4-08-12 202
419 여기가 어디뇨 1 돌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08-10 202
418 집으로 가는 길 해안121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10-12 202
417 아이리스의 보라 1 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6-14 202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상단으로